백합/나의 이야기

일오 장어탕& 네델란드 풍차ilo eel soup & nedland windmill

수성구 2021. 10. 26. 15:43

일오 장어탕& 네델란드 풍차

ilo eel soup & nedland windmill 

숨어우는 바람소리 - 김연숙

 

오늘 날씨 참 맑고 포근하다.

이러한 날씨에 우리는 파란 하늘을 벗삼아서

삶에 바탕을 둔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세계는 가을의 중반에서의 마음 드리는데

그래서 그런지 살아 가는데 영롱한 이슬 맻힌 나의

마음이라 한다.

Now our world gives me a heart in the middle of autumn, so it is my heart that is dewy to live. 

그리도 포근한 사랑에 목이 말라서 사랑의 생명수를

마셔야만 비로서 인간이라는 탈을 가진다고 본다.

마침 우리의 생이 이토록 진실하고 마음 베푸는데 그리도

고운 나의 인생이 이처럼 맑고 고운것이라 한다.

At the end of the day, our life is so true and heartfelt, and my life is so clear and fine. 

눈만뜨면 하루를 열어 가야 하는데 이리도 마음 짙은

사랑스런 그대의 진심을 알고파서 오늘도 눈물 짓는 하루를 산다.

높은 가을 하늘 어딘가에 당신의 실체가 있음에 나도 또한

마음 뜨거운 눈물이 나곤 한다.

I also have a heart-warming tear because there is your reality somewhere in the high autumn sky. 

아침에 성당을 가려 하는 내 마음이 이다지 신앙을 만들어 주신 우리 하느님이

난 그리도 매번 축복의 하루를 열어 본다.

그래서 살아 가는데 그리도 축복의 나래를 펼쳐 보고 싶은 나날들이라 한다.

오늘은 아침 미사 마치고는 까사미아에서 시간을 보낸다.

미사는 일찌기 끝나고 우리 알비나 형님을 만난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 수성못에 "일오 장어탕 집에 가는데 " 길에서의

말지나 형님을 만난다.

그래서 합세해서 "일오 장어 칼국수 장어탕"집에 들어서니 우리

배데레사 형님이 우리를 반긴다.

So, in addition, we entered the "Iloh Eel Kalguksu Eeltang"

 house and our brother Baederesa welcomes us. 

주인인 강안젤라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5명이 모두 장어 칼국수를 시켜서 먹는다.

우리 알비나 형님 장어는 못먹는다 하던데 장어 칼국수는 잘 먹는다

ㅋㅋ 그러고는 다 먹고 나니 장어 칼국수 인줄 몰랐다 한다.

장어 냄새가 하나도 안나서 몰랐다 한다. ㅋㅋ 히히

I did not know because I did not smell any eel.

그러고는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는 수성못에서의 오후를 즐긴다.

오다 보니 강이  아니 호수가 보이곤 한데 수성못의 경치를 한껏 만끽한다.

그러고는 우리는 운동삼아 걸어 오다가 성당이 있길래 상동 성당에서

조금 쉬다가 온다.

오늘은 아주 우리 보좌 신부님의 미사를 지낸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우리 보좌 신부님의 모친의장례에 신부님 눈시울을 적신다.

Wetting the priest's eyes at the funeral of our father's mother, who is still not going. 

난 미사에 보좌 신부님 모습 바라 보면서 아직도 생존해 계셔야하는

모친의 죽음이 못내 아쉬워 한다.

난 우리 조동혁 보좌 신부님을 보면 마음이 찡하고 아프다.

I feel sad and sick when I see our assistant, Cho Dong-hyuk. 

오늘의 복음에를 보면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고 믿음이 겨자씨와 같다면,

믿음이 곧 하느님 나라이며 하느님 나라가 곧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있다. 그 나라와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

주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1) 말씀하셨다.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열쇠를 받았다(마태 16,19 참조).

 

겨자씨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고 낮게 겸손한 모습으로써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나무처럼 커지셨다.

고난을 겪으실 때는 씨앗이시고 부활하실 때는 나무이시다.

시장하실 때는 씨앗이시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는 나무이시다.

복음에서 그분은 당신을 씨앗으로 표현하신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금세 반죽 전체에 퍼져 제 역할을 한다.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 안에서 이렇게 작용한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게 만든다.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고루 배어들어 영적인 인간이 되게 한다.

우리는 이성적이며 거룩한 누룩을 마음에 받아들인다. 이 값지고

거룩하고 순결한 누룩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그 많던 네덜란드 풍차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의 작은 도시 우얼르(Oerle)에 위치한 신트 얀( Sint Jan) 풍차의 모습. 코로나 봉쇄 이전에는 동네 주민들에게 맛난 빵과 음료를 판매하는 식당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 차현정 통신원


흔히 네덜란드를 떠올리면 형형색색의 예쁜 튤립과 풍차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직접 네덜란드에 와보면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풍차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풍차의 나라'는 옛말

땅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는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물을 퍼내는 용도로 풍차가 사용되었다. 용도에 따라 풍차를 부르는 이름도 달라졌는데 곡물을 찧는 방아 풍차, 치즈를 젓는 치즈 풍차 등이 일상에서 활용되었다.

17세기에는 약 600개가 넘는 풍차가 모여 있던 네덜란드의 잔세스 스칸스(Zaanse Schans) 지역이 산업 지역으로 급성장한 1등 성장 요인은 단연 풍차였다. 수로와 해상 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전달된 카카오, 쌀, 목재 등을 풍차를 이용해 가공제품으로 만들고 유럽 각 나라로 재수출하며 부를 쌓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잔세스 스칸스에 가면 풍차 박물관이 있고 그 지역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풍차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관리의 어려움과 효율성을 이유로 수천 개가 넘던 풍차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0개 정도의 풍차만이 남아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풍차가 많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풍차들은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통 지키는 20대 청년…"풍차 방앗간으로 밀가루 사러 오세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의 작은 도시 우얼르(Oerle)에는 젊은 청년이 모두가 떠난 오랜 풍차를 지키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네덜란드의 전통 '풍차'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십대 청년 욥 반 하젤. © 차현정 통신원


욥 반 하젤(Jop van Gassel)은 앳된 얼굴로 뉴스1 취재진에게 풍차 내부를 안내했다. 몇 달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봉쇄로 이미 풍차 내부의 레스토랑과 빵집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일하던 여러 직원들도 풍차를 떠났지만 욥은 지금도 매일 출근하여 밀가루를 빻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코로나 정책으로 레스토랑은 닫았지만 아직도 우리 풍차에는 밀가루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미리 주문을 하면 밀가루를 빻아 놓고 예약제로 판매 중입니다."

처음 전면 봉쇄가 실시되었을 때 네덜란드 전국의 슈퍼마켓에서는 밀가루 품귀 현상이 잦았다. 모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식인 빵을 만드는 밀가루는 필수 품목이었고 사재기가 극심했다.

"밀가루 사재기 때문에 우리 풍차 방앗간은 코로나 특수를 누렸죠. 고객들이 십 킬로 이상의 큰 포장 단위의 밀가루를 사려고 줄을 설 정도였어요."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생산된 질 좋은 밀을 직접 빻아 빵으로 바로 만들 수 있는 믹스 제품과 네덜란드의 전통 요리 중 하나인 파네쿠큰(얇은 팬케이크의 일종) 가루가 제일 인기 품목인데, 이 방앗간 제품을 한번 맛본 단골 고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네덜란드 고객들만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밀가루를 주식으로 먹는 인도, 이탈리아, 터키 등의 네덜란드 거주 이민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자 마케팅 방식을 네덜란드어에서 영어로 바꾸었지요. 고객들의 주문을 미리 받기 위해 영어로 소셜 미디어를 운영 중이고 홍보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사라져가는 풍차를 지키기 위한 노력

그가 일하는 신트 얀(Sint Jan) 풍차는 이 지역의 유명한 풍차다. 1987년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짓는 과정 당시의 사진과 설명 자료 등을 모두 모아 놓아 풍차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옥수수를 빻는 용도로 제작된 신트 얀 풍차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맛난 빵과 밀가루를 파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멀리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욥 반 하젤( Jop van Gassel)은 풍차 방앗간에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직접 곡식을 찧는 모습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매주 신선한 밀을 네덜란드와 독일 등지에서 가져와 직접 빻아 판매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몇 해 전 풍차에서 관광객 안내 자원봉사를 하던 욥이 운영을 맡게 되면서 활기를 되찾았지만 코로나 감염증 사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직접 빻은 신선한 밀가루 예약 판매로 살길을 모색 중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현재 100년이 넘은 풍차를 보존하기 위해 정부 운영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우리 풍차는 해당 사항이 없어요. 그래서 저처럼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풍차 운영에 도움을 주거나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속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풍차는 네덜란드의 상징인데 모두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제가 남기로 했어요."

풍차는 여러 기계로 연결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관리되고 수리를 자주 받아야 하는데 풍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들을 불러서 점검을 받으려면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욥씨는 말했다.

◇매년 5월 풍차 방문의 날

매년 5월 둘째 주 주말은 네덜란드 풍차 방문의 날이다. 관람권을 소지한 관광객은 네덜란드에서 지정한 900개 이상의 풍차에 횟수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고 풍차가 지어진 배경과 용도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풍차도 있어 관광객들뿐 아니라 네덜란드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날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네덜란드 관광청과 풍차 관리인들은 온라인 투어 등을 통해 전통이 이어지도록 노력 중이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