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의 이야기

잘 익은 가을 같은 사람

수성구 2021. 10. 21. 15:27

잘 익은 가을 같은 사람

a man of ripe autumn 

이젠 가을의 어느 오후에 깊어 간다고 본다.

로맨틱 ?올드팝송모음?추억의팝송 Oldies But Goodies

Now I think it is deepening in the afternoon of autumn. 

깊어 가는 가을 처럼 우리도 농익는 그러한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설익은 사람처럼 풋내나는 얄팍한

사람이 되지 말고 농후한 깊은 울림을 주는 가장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So I think that a person should not be a thin person who is like a ripe person,

 but the deepest person who gives a deep echo.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려면 배려 있는 그러한 친절하고 마음을 잘푸는

사람이 되어야 할거 같다.

이제 하루의 절반이 무르익어서 오후가 되니 나의 마음에도

하루를 정리 하는 시간을 주어 본다.

Now that half of the day is ripe, it is afternoon, so I give my mind time to organize the day. 

그래서 하루 하루를 열어 가는 나는 오늘도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근데도 난 지나고 나면 만날 그렇게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주어 진다.

However, after I pass, I have time for regret and reflection. 

이래선 안돼겠다,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하겠다 하고 다짐을 하건만

이미 떠나간 배와 같이 그렇게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 버리나 본다.

오늘도 아침에 성당을 가서 미사를 지내는데 신자들이 어제 보담은

조금 적게 나온거 같다.

지금이 한창 산을 타기 좋아서 그런지 야외 나가시는 분들이 많은거 아닌가 한다.

I think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are going out outdoors because 

they like to ride the mountain now. 

세월이 좋다고 산에 가고 싶으면 가고 해외 가고 싶으면 갈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요즘에는 그렇게 한세월을 잘 살아 가고는 한다.

아침 미사 마치고는 오늘은 우리 삐돌이 신부님이 까사미아에

오시지를 않으신거라 본다.

그러고는 우리는 차를 마시고는 난 알비나랑 둘이서 오는데

알비나는 예나 지금이나 참 멋이 있는 멋쟁이 인거 같다.

Then we drink tea and I come with Albina, and Albina seems

 to be a nice fashionable person for a while. 

그러고는 알비나는 농협에 볼일 보러  간다고 보내고는 난 집으로 온다.

오늘도 하루가 후딱 흘러 가고는한다.

 

 

오늘의 복음이랑께롱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49절)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종말의 불을 댕기는 불쏘시개요

장차 당신을 심판주로 오시게 할 종말론적 세례로 묘사하신다.

이 불은 세례를 받으면서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오는 복음의 불이다.

엠마오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이 불은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지르시는 불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이 불로 채워주시도록 청하도록 하자.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불을 질러 경건한 삶을

살게 하고 성령으로 타오르게 한다고 한다(로마 12,11 참조).

또한, 이 불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동반자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길을 배운다.

 

사랑은 좋은 것이다. 사랑은 하느님 자녀들의 마음을 다니며 속된 것,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들을 태워버리고 순수한 것으로 단련시킨다.

사랑은 그 불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든다. 예수님께서

이 불을 세상에 지르셨다. 그래서 믿음이 밝게 빛나고 신심이 불타올랐다.

사랑은 환해졌고 정의는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주님께서는

이 불로 사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 주셨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50절)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는

피와 순교로 이루어지는 세례인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위해

이 세례를 받으셨다. 이 세례는 어떤 얼룩도 더럽힐 수 없는 숭고하고도 복된 세례이다.

즉 당신 육신의 죽음을 말한다. 짓눌린다는 것은 그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당신이 고통을 겪고 수난 한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공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신앙을 가지면 가족과 불화하라고 하신 것일까?

만일 가정을 깨뜨려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지게 하려고 오신 분이라면

어떻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라고

하실 수 있겠는가? 자기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를 저주하신 분이(신명 27,16)

부모를 버리라고 하실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첫째가 하느님 사랑이고 그다음이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더 잘 공경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면 부모를 지으신 분은 얼마나 더 공경해야 하겠는가? 자기 부모의 아버님을

몰라보는 자가 어찌 부모는 알아보겠는가?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게 되면

나의 이웃도 올바로 섬기고 사랑할 수 있다. 하느님의 것으로서 올바로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저마다 하느님의 집이거나 악마의 집이다.

이 둘의 싸움이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