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6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수성구 2016. 12. 30. 06:36

2016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1독서 집회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복음 마태 2,13-15.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전에 동창신부와 유럽을 여행하다가 기념으로 똑같은 옷을 사서 입은 적이 있습니다. 핑크색(아주 환한 핑크색은 아니었음) 라운드 티셔츠였지요. 색깔도 마음에 들었고, 품이 넉넉해서 무척이나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이 옷을 자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다녀온 청년이 제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줍니다.

“신부님, 미국에서 남자가 핑크색깔의 옷을 입고 있으면 동성애자 취급을 받아요.”

이 말을 듣고서 이제 이 옷을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입고 있는 옷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을까요? 어느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혀서 강의실로 들여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알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를 알아보는 것이었지요. 이 옷을 입은 사람은 50퍼센트 정도는 알아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불과 21퍼센트만이 이상한 티셔츠를 알아보고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남의 이목이 신경 쓰여서 옷을 입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이유로는 굳이 입지 않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마음속에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감시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는 상태에서 과연 행복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충실하다면 그 자체로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자리에 충실한 것이 아닌, 대신 다른 사람의 이목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성가정 축일을 맞이해서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이루신 가정을 생각해봅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몸으로 왔다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자존심 상할 일입니다. 또한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성모님을 받아들인 요셉 성인 역시 다른 사람을 신경 썼다면 가능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성모님도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아기를 갖는 것이 생명의 위험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집중했으며, 가정 안의 사랑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성가정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사랑은 무엇일까요? 아마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보여주신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오로지 상대를 위해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 서로의 생명력을 키워 주고 생명력을 주고받는 사랑이 아닐까요? 그런 사랑을 우리의 가정 안에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기쁨의 가치를 충분히 누리려면 그것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마크 트웨인).


우리 동네 강아지 메주.


한 단어만으로(‘좋은 생각’ 중에서)

리처드 브랜슨은 작은 레코드 가게를 세계적인 기업 ‘버진 그룹’으로 키워낸 사업가다. 그는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라는 철학으로 회사를 이끌어 왔다.

그가 ‘버진 아틀란틱’이란 항공사를 세운 이유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자주 이용하던 항공사의 헤드폰 음질이 좋지 않아 불만이었다. 건의해도 고쳐지지 않자 질 좋은 음악을 들으며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항공사를 차린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약했다. 난독증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사업하면서도 회사 문서를 잘 읽지 못했다. 말도 더듬었다.

하루는 리처드 브랜슨과 빌 게이츠의 대담이 있었다. 사회자가 빌 게이츠에게 물었다. “조직은 무엇입니까?” 빌 게이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했다.

사회자는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가뜩이나 말을 더듬는 그가 하필 달변가인 빌 게이츠 다음에 답하는 상황에 놓였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마디 했다.

“……사랑.”

그 순간 강연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사랑과 신뢰로 연결된 조직이 가장 강하다는 깨달음을 한 단어만으로 전한 것이다.

사랑은 어떤 말보다도 가장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식의 말씀들을 하시지요.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함께 할 수 있으며, 함께 하기에 그 어떤 고통과 시련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이 더 중요할까요? 아니면 한 끼를 때우는 식사가 중요할까요?

내 가정 안에서부터 그 사랑이 충만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사라이 차고 넘어서 이웃들에게 전달되고, 이 땅 전체가 사랑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고드름이... 추운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