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수성구 2022. 9. 21. 03:38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언젠가 이메일을 통해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조금 난감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분을 알지도 못하고, 또 그 상황도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 분은 몇 년째 저의 묵상 글을 보고 있다면서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또 갑곶 성지 초창기에 자주 왔었다고 말합니다.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를 잘 알고 있으니, 도움을 당연히 줘야 하는 것처럼 메일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냥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분을 모르니까요.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친구의 연락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그 친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다고 하더군요.

“필요할 때만 연락하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을 때도 깊은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기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도 이런 모습을 취했던 우리는 아닐까요?
필요할 때만 기도합니다.
과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관심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보여주신 표징과 힘이 되는 말씀은 ‘메시아가 아닐까?’라는 가능성을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서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줄 메시아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요.
그래서 계속해서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표징을 보여주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필요한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자신의 변화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리들과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많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실천만을 우리에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실천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기 필요한 것만을 계속 청하고만 있는 우리가 아닐까요?

주님께서 부르는 사람은 능력 있고 재주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을 지금 부르십니다.


 
정확한 목표 없이 성공의 여행을 떠나는 자는 실패한다.
목표 없이 일을 진행하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모르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실행할 수 없다(노먼 빈센트 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