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교회를 위한, 교회의 복음서

수성구 2022. 9. 21. 03:31

교회를 위한, 교회의 복음서

에페 4,1-7.11-13; 마태 9,9-13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22.9.21.

 

  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세리였던 그를 눈여겨보신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주저하지 않고 응답했던 마태오는 그 부르심이 고마웠던지 동료 세리들은 물론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까지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잔치는 소외되었던 그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마태오도 역시 예수님께 관해서 바리사이들이 퍼트리던 온갖 거짓 소문을 다 들었겠지만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어서라도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는 자리에도 먼 발치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서성거렸을 것입니다. 그랬던 그를 예수님께서 눈여겨보시고 어느 날 길을 가시다가 마주치신 김에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마태오도 역시 직접 그 진리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분의 복음을 더 많은 이들에게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기피인물로 낙인찍혀 늘 떳떳하지 못하게 살아가던 동료 세리들은 물론이요, 돈 많은 세리들과는 정반대의 처지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혀 기죽은 채로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이 잔치상에 초대받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선포를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마태오는 세리 시절의 영민함을 살려서 복음 진리를 거의 40년 이상 동안, 그러니까 자신으로서는 한평생 걸려서 정리하여 기록했는데, 자신이 제자가 되어 직접 보고 들었던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훨씬 더 많은 동시대인들과 후대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는 먼저 쓰여진 마르코 복음서보다 더 자세하고 더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지닌 첫 번째 특징은 족보입니다. 마태오는 자신의 복음서 첫 머리에 예수님의 족보를 장황하게 실었습니다. 갈릴래아 출신의 시골뜨기에다 거짓 예언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사실은 예루살렘을 주름잡고 있던 그 당시 이스라엘 주류가 받들던 다윗 임금의 후손이라는 것, 더군다나 신앙적 혈통으로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유다 지파의 계보를 잇는 명망가문의 후예이심을 통한(痛恨)의 심정으로 밝히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족보에 등장하는 네 여인에게 비상한 방식으로 개입하셨듯이 마리아에게도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어 탄생하신 그 신성의 근원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복음서의 매 사건과 장면마다 이를 이미 예언해 놓은 구약성경의 말씀으로 일일이 해설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조상 대대로 믿고 기다려온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을 뒷받침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복음서가 구약성경의 해석서 기능을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성서적인 Fact Check를 해서 그분의 진면목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 세 번째는 다섯 꼭지에 이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취재하여 모아놓아서 독자들이 그분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마태오가 모아 놓은 그분의 가르침은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이 독점해온 종교적 정통성의 좁았던 통로를 활짝 열어젖힌 길이요 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산상설교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간추린 금과옥조(金科玉條)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전해 받은 하느님 말씀을 전해준 것처럼, 마태오도 예언자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종말설교와 그 안에 담긴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통해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종말을 앞당길 수 있는 교회의 사명임을 부각시켰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행하셨고 제자들에게 맡기신 파스카의 역사적 과업이 이로써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마태오는 자신과 후대 신자들이 이어 받아야 할 그분의 사명을 상기시킴으로써 사도로서의 직분에도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다섯 설교를 통하여 이미 세례를 받아 교회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교회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던 마르코의 메시지를 발전시켜서 교회론을 전개한 복음서입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도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길을 제시했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 주는 정체성 문제가 초점이었다면, 이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 위에서 그 십자가 희생이 과연 누구에게 먼저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구약과 유다이즘을 통해서 마태오가 제시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분을 교회 안에서 체험하고 만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강생과 부활의 신비에 이어서 파스카의 신비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하느님 나라라고 부르는 역사의 종말을 앞당기는 길임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마태오 복음서를 읽어야 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교회 안에서 만나고자 하면 마태오 복음서의 메시지에 충실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교회의 복음서이기 때문이고, 또 교회를 위한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