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하라

수성구 2022. 9. 14. 02:38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하라

민수 21,4ㄴ-9; 요한 3,13-17 /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22.9.14; 이기우 신부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합니다. 이로써 동물과 사람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식물이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과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햇빛을 받아 합성해서 광합성 작용을 하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양분을 얻음과 동시에 공기 중에 산소를 배출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성체를 영할 때 자신의 삶에서 끌어올린 믿음과 세상에서 얻은 희생의 체험을 합성함으로써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깨달음과 기운을 얻음과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로부터 40 일 전, 그러니까 지난 8월 6일에 교회가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낸 것은 오늘 지내는 십자가 현양 축일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전반기에는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주력하셨지만, 후반기에 들어서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제자들을 사도로 양성하는 데 힘을 쏟으셨습니다. 전자를 케리그마(Kerygma)라 하고 후자를 디다케(Didache)라 하는데, 활동의 양으로는 케리그마 활동이 훨씬 크다고 하겠지만 활동의 질로 보면 디다케 활동이 케리그마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정성을 다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이유는 그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서 당신처럼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디다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가르침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이를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수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그 예고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마냥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타볼 산에 올라 거룩하게 변하시는 모습을 세 제자에게 보여주어 동료들에게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게 하셨는데도 제자들이 부활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는 소용이 없었습니다(마르 9,2-10). 

 

  그러나 십자가는 부활의 보증입니다. 세 번에 걸친 예고 속에는 수난과 함께 부활도 함께 예고되었다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부활은 십자가로 인한 결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목적이자 동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자원하여 짊어지신 목적이자 동기는 그것이 메시아로서 걸어가야 할 운명으로 섭리적으로 예정된 것이기도 했지만 하느님으로 부활하시어 모든 믿는 이들을 하느님 나라로 데려오시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앨 수 있는 그 길을 그리스도인들도 걸어가게 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부활 신앙으로서 그 가치를 빛나는 보석처럼 지니는 이유 또한 다른 이들의 죄와 잘못과 허물로 인한 십자가를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짊어지고 나서는 이타적인 동기 덕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식이요,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인간적인 지성으로 고안해 낸 세상의 그 어떤 고상한 철학과 윤리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계시해 주신 신성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숨어 있는 구원의 신비는 성체의 신비와 직결되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동기도 당신의 제자들이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이룩되는 거룩한 변화는 결국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이룩할 수 있는 거룩한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고백한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 숨어 있는 구원의 신비를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십자가를 짊어질 기운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참여하게 될 그리스도의 부활을 앞당겨서 미리 기쁨과 보람으로 느끼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체와 성혈을 천사의 양식이라고도 일컫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요한 6,35)이라고 일찍이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뜻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이 제자를 사도로 양성하는 가르침의 으뜸이며, 십자가의 희생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거룩한 기운을 주는 성체성사가 성사의 으뜸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또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떠 올리시기 바랍니다. 내 탓으로 주어진 십자가이건, 남이 나에게 짊어지워준 십자가이건, 또는 내가 원해서 짊어진 십자가이건 간에 그 어떤 원인과 동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모든 십자가는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하십시오. 이것이 영적 광합성 작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