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수성구 2022. 9. 14. 02:47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미국의 한 심리학 실험실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집단은 하루 일정을 일원화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앴고, 다른 집단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일정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두 집단의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통제 집단보다 스스로 일정을 선택하는 집단이 훨씬 더 건강했고, 더 오래 사셨습니다.

제아무리 안락하고 편하다 해도 주어진 대로만 누리려는 수동적 태도는 삶에서 생기를 빼앗아 갑니다.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고통과 시련을 주신다면서 불합리한 하느님이라고 불평불만을 말씀하시는 분을 종종 좁니다.

즉, 하느님께서 고통과 시련 없이 알아서 좋은 것만 주셔야 한다는 논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더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생기를 잃어가면서 살도록 무엇이든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진짜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사랑하기에 고통과 시련을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리는 희생으로 극치를 이룹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하느님을 배반해 벌을 받아 모두 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측은히 여겨 모세가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이 들게 하고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죽음에서 모면토록 하셨습니다(민수 21,4-9).

이제 하느님께 보내신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그때의 구리 뱀처럼 죄인들의 구원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이런 당신을 보는 사람이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아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과거 이스라엘 사람도 구리 뱀을 봐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알아서 해 달라는 기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주체적인 마음을 세워서 직접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오늘,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자유의지를 주체적으로 내세워 사는 사람만이 지금의 삶에서 생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인정하면 그 다음에는 상대를 인정하기 쉬워진다(네모토 히로유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