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의 이야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vs "고백성사"

수성구 2022. 9. 13. 15:28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vs "고백성사"

India vs "Confession History," which was a British colony

어느새 난 창가에 자리를 잡아서하루를 

지내 보려 한다.

매일 매일의 정리를 하는 순간에 "나" 라는 

인간을 저 수풀속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I want to throw a human being called "I" into the

bushes at the moment of daily arrangement.

그래서 그런지 하루를 잘 살아 온건지 아님 

나의 생각이 옹졸해서인지 지나온 세월을 

곱씹으면서 나를 내려 놓아야 한다고 본다.

So I think that I should put me down while chewing on the years that have passed,

whether I have lived well for a day or my thoughts are small.

살아 가면서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내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동안에 이런 저런 일로 나의 인생관이 많이도 

흔들리기도 했다.

In the meantime, my view of life has been shaken by such things.

그럴때면 늘 주님을 가까이 하고는 한데 다른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그 이상으로 난 많은 시간들을 기도로 

살아 온거라 한다.

When I do, I always keep close to the Lord, but I have lived with prayer

for many hours more than others are looking for God.

내 마음이 좁게 성질이 날 때면 으례히 "고백성사"로 나를 

돌아 보고는 한다.

근데 요즘에는 거의 "고백성사"를 보지 못하고는 한데 

마음의 때를 벗겨야 새로운 내가 태어 난다고 본다.

But nowadays, I do not see almost "confessions", but I think that I am born when I take off my heart.

오늘은 아침에 성당에를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오늘은 

어느 부인의 "장례미사"를 거행한다.

뭔지를 모르지만 우리 주임 신부님 장례미사를 참도 경건하게 

드리고는 한다.

그래서 장례미사 때에는 관을 사이로 미사를 드리는데 

벌써 유골은 "화장"을 하고온거라 본다.

So, at the time of funeral mass, I Mass through the coffin,

but I think the ashes have already been "cosmetic".

그래서 우리는 장례미사를 드리고는 난 까사미아에 

잠간 들렀다가 집에 온다.

아, 참 오는 길에 상동 시장에 상동 내과에 "피검사"를 하고 온다.

Oh, on the way to the Sangdong market, I come to Sangdong Internal Medicine with "blood test".

그러고는 여기 저기 들러서 필요한 품목을 사고는 집으로 오니 

요즘 걷기 운동을 안하다가 조금 걸으니 운동이 되나 싶다.

Then I stop here and there and buy the items I need and come home.

I do not exercise to walk these days, but I want to be a exercise.

이제 가을이 오면 아니 가을이 지금 온거란다.

조금씩 걷기 운동을 하고 살을 조금 빼야만 한다.

You have to walk a little bit and lose a little weight.

오늘의 복음에서 보면 

누가 사람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앵’하고 태어나, ‘휙’하고 살다가, ‘억’하고 죽더라.”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인생이 긴 것 같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얼마 전에 서울 신학교 동창 신부가 강화에 찾아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신학교 다닐 때의 사건 사고를 이야기했고, 또 재미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실컷 웃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3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 하늘 같았던 교수 신부님들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지금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기다릴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일한 것이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최후의 순간에 어떤 기억을 떠올릴 것 같습니까?

고을 성문에서 두 행렬이 마주쳤습니다.

하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예수님의 일행이었고, 또 하나는 마을에서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죽은 이는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 과부는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유일한 희망을 걸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아들마저 잃은 이 여인의 처지는 어떠했을까요?

당시는 여자 혼자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던 것입니다.

외아들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죽음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죽음 앞에서 힘든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 있는

외아들의 어머니를 가엾이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울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원의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께 대한 사랑의 기억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기억만을 만들면, 결국 후회를 남길 수밖에 없는 삶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주님께 대한 기억이 구원의 큰 선물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복음: 루카 7,11-17: 젊은이여, 일어나라

 

예수께서는 나인이라는 곳에 가시다가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주신다. 

죽은 사람이 과부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슬픈 상황이다. 

백인대장의 경우에는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받으시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부탁드리지 않았는데 주검 가까이 가신다. 

 

예수님은 과부에게는 눈물을 빨아들이는 해면이 되셨고, 아들에게는 생명이 되셨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으러 가고 있었다. 

이 상여 길에서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분은 죽음과 부패를 이기신 분이시다. 그분은 과부의 눈물이 그치도록 자비를 베푸신다.

 “울지 마라.”(13절) 여인을 울게 했던 원인이 그 말씀과 함께 사라졌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하시며, 결국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인간의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여에 손을 대시고 상여를 멈추셨다(14절). 

그리고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14절) 명령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 젊은이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아들이 어머니 품에 안기게 되었다(15절). 

예수께서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소외당하는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심을 알 수 있다. 

 

구원은 우리 인간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우리에게 내려지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중들의 반응을 보면 처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즉시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로 바뀐다.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변할 수 없다. 

나 자신의 진정한 변화의 기적을 청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블룸버그 의 최신 계산에 따르면 인도는 2022년 3월 말 영국을 제치고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이 되었습니다 . Bloomberg 는 IMF 데이터베이스와 과거 환율을 사용하여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조정된 기준과 관련 분기 말일의 달러 환율을 사용하여 3월까지 분기 동안 '명목' 현금 조건으로 본 인도 경제 규모는 8,547억 달러였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영국은 8,160억 달러였습니다.”라고 Bloomberg 보고서는 말했습니다.

블룸버그의 예측에 따르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7%로 예측되는 등 인도의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덕분에 향후 몇 년 안에 올 2분기 GDP 1% 성장에 그친 영국과 큰 격차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아래 블룸버그 그래프 참조).

출처: 국제통화기금

이 소식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인도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선진국” 이 되기로 결의할 것을 국민들에게 촉구 한 직후 나왔습니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중 하나, 특히 2세기 동안 인도 대륙을 지배한 영국 경제를 넘어선 것은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인구 규모는 두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 중 하나입니다. 2022년 기준 인도의 인구는 14억1000만 명, 영국 인구는 6850만 명입니다. 즉, 인도의 인구는 영국의 20배입니다.

두 나라의 인구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1인당 GDP는 한 국가의 GDP를 해당 국가의 인구로 나누기 때문에 소득 수준을 보다 현실적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평균적인 인도인의 소득은 영국인의 소득보다 훨씬 낮습니다.

평균적인 인도인의 소득은 영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출처: Our World in Data)

아래의 표는 인도와 영국에서 극빈층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줍니다. 19세기 초 영국의 극빈층 비율이 인도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에 따라 인도가 빈곤 퇴치에 큰 진전을 이뤘음에도 영국보다 훨씬 높은 극빈층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도와 영국의 극심한 빈곤 비율(출처: Our World in Data)

또한 의료, 교육, 생활수준 등을 반영하는 인간개발지수(HDI) 면에서 인도와 영국의 격차가 여전히 크며, 인도가 영국의 1980년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10년 이상 걸릴 전망입니다.

전국민 의료보험 적용면에서 보편적의료적용(UHC) 지수 면에서도 아직 양국의 차이가 큽니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