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마리아 탄생]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기 그지없나이다

수성구 2022. 9. 8. 04:48

[마리아 탄생]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기 그지없나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기 그지없나이다

미카 5,1-4; 마태 1,1-23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2022.9.8.(목)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눈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대쵸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잉태와 탄생, 혼인과 출산, 아들 출가와 공생활 뒷바라지,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며 사도들을 모이게 하여 그 중심에서 교회 출현을 이끌어내신 일 그리고 승천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서 하느님께서는 놀랍게도 성모 마리아를 통해 교회를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하신 셈입니다. 오늘은 그 생애의 출발점인 탄생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는 그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늙도록 아이가 없다가 기도해서 낳은 늦둥이 외동딸입니다. 복음사가들이 마리아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 길이 없으니 성경에 기록해 놓지는 못했으나,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구세주를 낳아 기르도록 간택되신 분이라면 마땅히 하느님께서 그에 걸맞는 품위를 부여하셨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신앙 감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잉태 당시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배려하셨다고 여기는 무염시태 신심으로 시작되었고, 무염시태 축일인 12월 8일부터 꼭 열달이 되는 오늘에 무염시태의 은총이 비로소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복음사가 마태오가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총을 눈치 채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삽입해 놓은 또 하나의 중요한 코드가 여인들의 이름입니다. 흔히 유다인들의 족보에는 가부장적 문화를 반영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들만 연이어 나오기 마련인데, 예외적으로 다섯 명의 여인 이름이 등장합니다: 타마르(마태 1,3), 라합(1,5), 룻(1,5), 우리야의 아내(1,6) 그리고 마리아(1,16)입니다. 

 

  마리아를 뺀 네 여인에게 공통적인 사연은 이들이 윤리적으로 비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데 있습니다. 유다에게 페레츠와 제라를 낳아준 타마르는 유다의 아내가 아니라 며느리였고(창세 38,18), 살몬에게 보아즈를 낳아준 가나안 사람 라합은 예리코성의 창녀였으며(여호 2,1; 룻 4,21), 모압 여인 룻은 보아즈와 혼인하기도 전에 동침하여 오벳을 낳았는가 하면(룻 13,14), 다윗에게 솔로몬을 낳아준 밧세바는 본시 그의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2사무 11,4). 이 네 가지 경우를 세상의 눈으로만 보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 하느님의 손길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는 그 여인들이 의도하지 않게 처하게 된 위기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바에 대한 보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들의 충성스런 마음에 보답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위기에 어김없이 개입하시어 당신의 구원 계획을 관철하셨습니다. 하느님 개입이라는 놀라운 사연을 미리 깔아 놓고 나서야 마태오는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조심스레 족보의 말미에 내세웠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6). 이것이 성령으로 인한 동정녀 잉태로서 또한 가장 결정적인 하느님의 개입입니다. 

 

  마리아뿐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도 자신들이 맞닥뜨린 위기와 뜻밖에 처하게 된 한계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함으로써 막판에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던 일이 많습니다. 우리의 생애는 물론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순간에 맞추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불안정했던 판관 시대를 마감시킨 마지막 판관이자 왕정 시대를 출범시킨 첫 번째 예언자로 알려진 사무엘도 그 어머니 한나가 늙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다가 늙은 나이에 기도해서 얻은 아기였습니다. 한나는 그 기도의 지향으로 만일 아들이 태어난다면 반드시 하느님께 바치겠노라고 서원을 했고, 과연 사무엘이 자라자 사제 엘리에게 보내서 예언자 수업을 받게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늘그막에 얻은 늦둥이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가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일부러 찾아와 기쁜 전갈을 주었으나 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즈카르야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오로로 불리우는 사울은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설치다가 그예 벼락을 맞고 나서야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인생을 송두리채 전환시킨 그 사건을 비롯해서 그 후에 겪은 환난이 모두 다 은총이었다고 말년에 회고하였습니다(1코린 15,10). 사실 스테파노로 인한 박해와 바오로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에서 로마인들의 침공으로 인해 멸망한 유다교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테파노의 순교가 복음을 북쪽으로 흩어지게 하였고, 바오로가 다시 그 복음화의 방향을 로마제국의 그 넓은 강역 전체로 돌려놓았던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교우 여러분! 오늘 맞이하는 마리아 성탄에 있어서도 예수 성탄에 맞갖은 기쁨과 축복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 기쁨과 축복의 지향은 여러분의 삶 안에서도 어김없이 개입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이 굽어보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