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 7.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6,20-26: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오늘 복음은 참된 행복을 가르쳐 주신다.
루카는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20절) 이것은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죄에서 가난한 사람, 악덕에서 가난한 사람, 세상 우두머리에게 빼앗길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요한 14,30 참조).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그분처럼(2코린 8,9 참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우리가 몸과 마음, 모든 힘을 다하여, 가진 것을 다해서 하느님께 충실하고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생활 때,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는 바보스럽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영원으로 그리스도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물론 현세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은 좋은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원하신다.
문제는 하느님과 세상의 가치관이 마음에 어떠한 순서로 정리되어있느냐에 달려있다.
항상 하느님께서 우리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면 모든 것은 잘 되어있는 것이다.
반대로 재물이 첫 자리를 차지한다면, 하느님께나 인간에게나 제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가난하고 굶주리고,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사람, 하느님의 아들 때문에
박해도 당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 앞에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을 모시고 살 수 있다.
우는 것도 자신의 잘못 때문에, 나의 잘못으로 하느님을 떠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울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울어줄 수 있는 그러한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유하다는 것은, 마음이 세상의 일로 차 있으므로 하느님이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일에 즉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 때문에
결정적으로 슬픔을 맛보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복음에 나오는 불행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형벌을 뜻하며, 애통하여 소리친다는 뜻이다.
우리 신앙인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 청년의 비유에서 보듯이,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잘 지켰던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선행을 하는 데 있다.
이렇게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행복한 우리가 되어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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