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다해 연중 21주일/ 루카 13,22-30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기쁨♣>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수성구 2022. 8. 21. 06:14

다해 연중 21주일/ 루카 13,22-30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기쁨♣>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기쁨♣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다해 연중 21주일/ 루카 13,22-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한 투쟁의 순례를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3,24)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폐쇄적인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살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뿐이겠습니까? 누구든 구원받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 않으며, 그에 합당한 준비와 행동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따르면 구원과 관련된 문은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넓은 문은 하느님과 관계없이 각자의 기준과 판단에 따른 것으로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당장 편하고 내 입맛에 맛아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겠지만 다 헛되고 헛된 일일뿐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문은 좁은 문, 곧 땀을 흘려야 하고 어려움을 겪어내야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실행함으로써 그 자비 안에 머물고,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하느님의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문이요 사랑의 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삶과 수난의 여정이 바로 그 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널찍한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합니다. 곧 나는 어떤 길을 왜 가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삶에서 그런 선택과 결단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길이 어떤 길이며 왜 이 삶을 살려고 하는지를 잊고 산다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하고 말 것이 뻔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13,25)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다가올 내일도 그저 그런 미지근한 삶을 살면서 구원과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세상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은 좁은 문, 곧 십자가의 길을 ‘있는 힘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받아들이고 살아냄으로써 주어질 것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자비 안에 머물기 위한 문이라면 비우고 낮추어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통과할 수 없겠지요. 좁은 문은 친분관계나 제자라는 사실, 또는 신분이나 세상적인 업적으로 통과하는 문이 아님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또한 그 문이 닫혀버리기 전에 좀 더 낮추고 가난한 마음으로 사랑의 존재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독선과 편협한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혼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자비의 삶, 의로운 삶, 형제애의 실천함으로써 참 행복을 위한 좁은 문을 통과하도록 헌신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