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 믿으셨으니 복되신 분, 성모 마리아
믿으셨으니 복되신 분, 성모 마리아
2테살 1,1-12; 마태 23,13-22 /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2022.8.22.; 이기우 신부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입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1925년에 제정되면서 예수님께서 왕(王)이시라면 그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당연히 임금의 어머니를 뜻하는 모후(母后)로서 예우를 받으셔야 한다는 뜻에서 성모승천 대축일이 지난 일주일이 되는 오늘 전례에서 마리아 모후 기념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인성을 가르치는 존재이지만, 성모 마리아께서는 어린 시절의 예수님께 어머니로서의 사랑과 더불어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가르치셨습니다. 인성 교육과 신앙 교육을 함께 시키신 이 모범이 모든 어머니들에게 거울이 됩니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성모신심이 대단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모신심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믿음을 본받는 일로 이어졌고, 이는 가정교육에서 인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박해시대 교우촌에서는 신자들 사이에 출신 신분을 따지지 않고 모두 다 평등하게 믿음의 벗이라는 뜻으로 ‘교우’라고 부르며 형제처럼, 친척처럼 대했습니다. 단, 신분이 미천했더라도 교리 지식이 뛰어난 신자에게는 각별히 존경심을 표하며 배움을 청했습니다. 양반 출신이 아니라 농사짓는 양민 출신로서 ‘내포의 사도’로 불리었던 이존창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권일신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고향인 여사울을 중심으로 내포 지방에서 활발한 전교활동을 벌여서 수많은 이들을 입교시켰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충청도 내포 출신 신자들은 전부 그의 교리 지식 덕분에 입교한 사람들입니다. 김대건 신부의 조모가 이존창의 조카딸이며,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는 이존창의 사촌누이인 멜라니아의 조카딸입니다.
천주교 교리를 배워 영세한 신자들은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바쳤습니다. 어쩌다 사제가 방문해서 미사를 드리게 되면 하루 전부터 공심재를 지켜가며 정성껏 바쳤기에, 그냥 미사가 아니라 ‘미사성제’라고 불렀습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신자들은 박해시기에 입교 영세했기에 때가 오면 치명하여 신앙을 증거할 각오를 당연히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문의 고통에 못이겨 배교할까봐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배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평소에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습니다.
이제 박해가 종식된 지도 백 년이 넘게 지나서 신앙 진리가 충분히 우리 사회에 퍼져나간 오늘날, 우리네 신앙현실을 둘러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는 박해시대 교우촌에서 증거했던 신앙적 가치관 대신에, “부자 되세요!” 또는 “대박 나세요!”란 덕담이 스스럼없이 유행하고, 잘 산다는 기준이 온통 경제적으로만 통용되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중산층의 기준으로 통용되는 것은 대개 이 정도입니다. 첫째, 부채 없이 30평 이상인 아파트를 소유하고, 둘째 월 급여는 5백만 원 이상이며, 셋째 중형급 이상의 자가용을 소유하고, 넷째 통장에 현금을 1억 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다섯째 1년에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다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 기준은 다릅니다. 첫째,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둘째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 셋째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넷째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등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페어 플레이를 할 것, 둘째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지닐 것, 셋째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넷째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다섯째 불의와 불평등과 불법에 의연하게 대처할 것 등입니다.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은 중산층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이 프랑스 여론의 단면으로 보입니다. 첫째,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둘째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을 것, 셋째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을 것, 넷째 남다른 요리 하나쯤 만들 수 있을 것, 다섯째 공공이 느끼는 분노에 의연히 참여할 수 있을 것 등입니다.
이렇게 보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 사회에서 잘 산다는 중산층 기준이 박해시대 교우촌과는 물론 선진국들의 중산층 기준과 비교해 보아도 너무나 물질적인 데 치우쳐 있어서 매우 천박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중산층의 가치관을 복음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매우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선도해야 할 가톨릭 중산층의 기준을 꼽아 본다면, 가족이 다 함께 아침저녁 기도를 바치는 일과, 주일미사를 참례하는 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사회적 공동선에 참여하고 사회적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일 정도는 기본 덕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본 덕목에 더하여, 성경과 교리 이해를 비롯한 종교적 교양과 하느님의 선에 눈을 뜰 수 있는 문화 예술적 교양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 개별적 도움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가 법률과 정책에 의해서 떳떳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전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일에도 앞장설 수 있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에 특별히 기도하게 되는 지향은, 이미 중산층인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믿으셨으니 복되셨던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믿음이 빈약한 처지를 면하고 믿음으로 품위를 갖추어 사회에서 존경받는 시민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아실현의 길로 나아가기 전에 이를 위한 존경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길입니다.
'백합 > 오늘의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전운전이 보험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0) | 2022.08.23 |
---|---|
2022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0) | 2022.08.23 |
다해 연중 21주일/ 루카 13,22-30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는 기쁨♣>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0) | 2022.08.21 |
연중 제21주일: 다해 <루카 13,22-30: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조욱현 토마스 신부 (0) | 2022.08.21 |
2022년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0) | 202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