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연중 제19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8. 7. 06:06

연중 제19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9주일: 다해

복음: 루카 12,32-48: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의 주제는 구원을 기다림이다. 구원이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매일 겪고 있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완성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느 때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항상 허리에 띠를 매고 손에는 등불을 켜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참조: 루카 12,35). 지혜서의 내용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던 날 밤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의 맏아들들을 멸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의 자녀들은 구해주심으로써 그들의 선조들과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지혜 18,6-8 참조).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스카’를 거행할 때 항상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를 불렀습니다.”(지혜 18,9). 이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수백 년을 기다릴 줄 알았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구원에 대해 기다림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믿음 때문에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셨던 과거에서 시작하여 구원받는 미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수백 년을 기다려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심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원을 우리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미 이루어진 것’,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결정적인 구원의 완성 사이에서 우리는 이 구원을 체험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에게 오고 있는 미래, 즉 구원의 완성이 있다.

 

히브리서에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700년쯤 뒤에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린 분이시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아들을 약속하셨으나 믿었고, 낳은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 명령을 따랐던 믿음을 가진 분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한 땅은 아브라함과 선조들에게는 하느님께로부터 약속받은 참된 고향, 즉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히브 11,10)이신 “하늘 본향”(히브 11,16)의 ‘상징’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기다림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우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앙인임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니 거기에 목숨을 걸지 말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라고 하신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하늘나라에는 우리가 온갖 노력을 다하여 들어가야 한다. 선행과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구원이 이 세상에 널리 퍼져가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렇게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체험되고 있다면, 그 나라는 마지막 날에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또는 어떤 순간에 나타나게 될지 모르는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항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깨어있는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자유는 진리 안에서만 자유로우며, 진리 안에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언제나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허리에 띠를 매고”(35절) 라는 것은 여행이나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으로 움직이는 데 편하게 하는 것이다. “등불을 켜 놓고”(35절) 있는 것은 한밤중에 주인이 갑자기 돌아올 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겁이 나서나 불안해서 취하는 태도가 아니라,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는 기쁨에 차서 취하는 태도이다. 그 기쁨을 알기 때문에 충실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린다는 것은 받을 상에 대한 기쁨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40절) 는 말씀은 위협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시는 그 하늘나라에 기쁘게 마음과 정신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초대의 말씀이다.

 

두 번째는 충실한 집사에 대한 비유로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겨냥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갖는 권위는 항상 봉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심판이란 이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48절) 다른 사람들에게 깨어있으라고 가르치는 사명을 가진 복음의 선포자들은 오늘의 말씀이 자기들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복음이 그들에게 지배와 권세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우리가 여러분의 믿음을 좌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의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동료일 따름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믿음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2코린 1,24) 오늘의 말씀을 잘 묵상하며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