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거룩한 변모 축일] 미리 보는 하느님 나라와 부활

수성구 2022. 8. 6. 04:50

[거룩한 변모 축일] 미리 보는 하느님 나라와 부활

 

미리 보는 하느님 나라와 부활

다니 7,9-10.13-14; 마태 17,1-9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22.8.6.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시고 타볼 산에 오르셔서는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하셨는데, 얼굴도 빛나시고 옷까지도 하얘지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그분이 모처럼 하느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천지 창조 이전부터 계시던 그 모습일 것이요,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그 모습일 것입니다. 

 

  놀라운 광경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는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당시보다 1250년 전 인물이요, 엘리야는 800년 전 인물이었습니다. 지상의 일들을 천상에서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차원에서 가능한 일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겁니다. 천상의 차원에서는 현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신성의 현실이 얼마든지 벌어집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또 천 년 같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통공의 현실입니다. 

 

  이 거룩한 변모 사건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일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으키신 일이고, 세 제자를 데리고 가신 것도 의도적으로 그리하셨습니다. 세 사람만 데리고 가더라도 나머지 제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지리라고 보셨겠지요. 그 무렵 제자들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기적들을 보고서 범상치 않은 분임을 짐작하기는 했겠지만 설마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은 생겨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명백히 드러내신 이 사건은 수난과 죽음 보도, 빵의 기적 보도 등 매우 중요한 다른 사건들처럼 네 복음서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신 이 타볼산 기적의 효과가 처음으로 나타난 때는 제자들이 빈 무덤을 목격한 때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레나의 급한 전갈을 받고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은 놀랍게도 비어 있었습니다. 물론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따로 잘 개켜져 있었고, 시신을 둘렀던 아마포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시신 도난에 대한 염려는 덜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믿게 된 계기는 막달레나의 발현 체험이었습니다. 발현하신 그분을 만났다는 증언으로 말미암아 빈 무덤이 좌절의 계기가 아니라 부활 신앙의 계기가 되게 해 주었던 것인데, 바로 여기에 타볼산 효과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막달레나의 발현 증언을 듣고 나서는 부활에 대해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모두에게도 직접 여러 번 나타나셔서 기어코 그들을 사도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사도로 변화된 그들 중, 특히 베드로는 초대교회를 이끌다가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치명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첫 주교로서 헤로데 영주에 의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치명했으며,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느라 치명하지는 못 했지만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옮겨간 초대교회의 본산을 지키면서 소아시아의 일곱 공동체를 돌보았고, 박해받던 신자들을 격려하느라 사목 서한, 묵시록에 이어 요한복음서까지 귀중한 계시 기록을 남겼습니다.

 

  제자들을 사도로 변화시킨 계기가 된 이 사건을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로 지냅니다. 오는 9월 14일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데, 오늘부터 꼭 사십 일 후입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사십 일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씨앗을 알아보고 결국 십자가로 부활하는 타볼산 효과에 기반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그 심오한 의미와 영광스러운 본질을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십자가 사건이 느닷없이 닥치더라도 놀라거나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으로 그리하셨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창한 시대의 징표에서나 평범한 일상의 징표에서도 특히 십자가에서 그분의 본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낯설지만 빛나는 예수님,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소환하시는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겪기 전에 미리 그 본질을 깨닫게 해주시는 예수님, 이분이 우리가 믿는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에 미리 부활의 영광을 알려주심으로써 소명을 받아들일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분을 따를 수 없다는 말씀을 이미 들은 우리에게, 거룩한 변모 사건에서 더 분명하게 주어진 메시지는,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 쇄신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할 수 있는 제1차 관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제2차 관문은 쇄신된 교회가 예수님처럼,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