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8. 6. 04:4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다해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당신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얻으실 영광 받으신 모습이다. 이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수난의 때가 되어도 제자들이 당황하지 않게 해주시려는 배려이다. 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분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항상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복음: 루카 9,28-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루카복음 9,27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신다.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장차 이 땅에 나타날 당신을 둘러싼 영광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오실 것이다. 당신의 그 영광을 세 제자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기도하신다.

 

그때에 거기서 놀랍도록 밝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뀌어 옷마저 번개처럼 번쩍이고 빛처럼 반짝였다. 거기다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곁에 나타나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대화의 내용은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주시는 신비와 십자가 위에서의 고귀한 고통을 의미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 곁에 나타난 것은 그분이 바로 예언자들의 주님이심을 제자들이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더욱이 죄 많은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을 견디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잠에 빠졌다고 표현한 것 같다. 그들은 나약한 잠으로부터 회개하고 깨어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보았고 그분의 위엄을 볼 수 있었다. 그분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말한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33절)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필리 1,23) 베드로 역시 사랑하는 마음과 열심한 행실로 초막 셋을 짓겠다고 약속한다. 베드로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주님의 구원업적은 시작 단계에 와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를 못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34절) 그들을 덮은 것은 주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영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칠 것이다.”(루카 1,35) 이 현상은 하느님의 말씀이 들릴 때 나타난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35절) 이 말씀은 거룩한 아드님을 가리킨다. 이 구름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음성에서 비롯하는 믿음의 이슬로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빛나는 구름이다.

 

아버지의 음성은 바로 십자가의 순간이 가까이 왔을 때,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에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의 믿음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힘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부활을 통해서 주님의 인성까지도 하늘빛에 의해 영광을 받게 되시리라는 것도 알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게 해 주셨다.

제자들은 아직 연약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자 겁이 나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주님은 자애로운 주님이시기에 말씀과 손길로 그들을 위로하며 일으켜 세우신다. 그분은 산 위에서 번갯불처럼 번쩍이셨고 해보다 더 밝게 빛나심으로 우리를 장차 드러날 당신의 영광의 신비로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라고 분부하신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 취급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할 것이다. 주님의 변모 축일은 바로 우리의 변모를 위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