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십자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

수성구 2022. 8. 5. 03:43

십자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

 

나훔 2,1-3,7; 마태 16,24-28 /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2022.8.5.;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는 나훔 예언서입니다. 나훔은 다른 예언자들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앗시리아 제국은 하느님의 막대기가 아니라 악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과연 앗시리아는 왕실 내부의 권력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백성 안에서도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자들이 무한투쟁을 벌이며 약자들을 짓밟으며 망해갔습니다. 이러한 사태 진전의 배후에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숨어 있으니, 바로 하느님께서 악의 수괴와 싸우시는 전사이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당신의 백성에게는 저지른 죄과를 기워 갚게 하시느라고 치욕을 당하고 유배에서 우상숭배를 강요당하도록 내버려두셨으며, 무엇보다 하느님을 믿고 섬기며 나누는 기쁨을 빼앗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조정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다가 국력이 쇠잔해져서 온 민족이 노예살이를 했고 천 년 이상 멀쩡했던 나라가 두 동강으로 쪼개졌으며 전쟁까지 치루어야 했던 고난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도 한민족은 교회 박해로 인해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민족이 겪은 이 두 번째 고난, 즉 식민통치와 분단, 전쟁은 물론 친일세력에 의한 독재 등이 모두 외세에 시달려 고난받았던 세월이요 한반도 평화의 열쇠를 쥐고 분단과 긴장을 관리하려 드는 미국의 동맹영향력도 우리 민족에게는 또 다른 고난으로 남아 있습니다. 맹목적인 서구화에 숨겨진 문제점과 마찬가지로 맹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는 태도가 그래서 문제입니다. 이제 겨우 평화를 회복하고 축일을 지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징표를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상기해야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메시지가 오늘 복음입니다. 하느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만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던 베드로만이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당신 가슴에 묻어 놓으셨던 메시지를 공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이 십자가는 다시 얻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관문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를 얼마나 짊어지고 살았는지를 보아 심판하시겠다고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개인에게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가정에도 있고, 교회에도 있으며, 민족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십자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분단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은 부활의 경지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요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민족이 그 동안 겪은 고난의 바닥을 치고 이제 국운이 상승하고 있다는 지표가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두 교황이 직접 방한하여 들려준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한민족이 근현대사의 질곡을 모질게 당한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들보다 더 정의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정의로움에 있어서는 신앙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통해 이루어질 민족 복음화보다 더 크고 원대한 아시아 복음화를 목표로 삼아 한국교회가 앞장서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교회의 모델로서 지금의 한국교회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쇄신시키라는 것이 두 교황의 메시지였고, 이미 사십 년 전 전국 사목회의가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기록해 둔 터입니다. 

 

  사실 이러한 메시지가 한국교회에 주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자못 막중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희년을 앞두고 아시아 주교 시노드를 마치면서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시아 복음화에 대해 이렇게 진단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아시아에서 태어나셨고, 그래서 교회도 아시아에서 출현했는데, 정작 아시아에서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님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아시아에서 탄생한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 이외에도 불교, 유교, 힌두교 등 위대한 영적 전통에 가리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위대한 예언자 정도로는 간주하지만 하느님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날 수 있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이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아시아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한 교회 쇄신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민족의 단련과 정화 과정은 거쳐 왔다고 하겠으나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 나는 부활의 경지는 남아 있는 상황에서, 십자가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요, 부활의 조건이라는 그리스도 신앙의 공리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이 십자가의 길에 하느님께서 앞장서서 악과 싸워주실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