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6. 25. 02:54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조욱현 토마스 신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오늘 독서 복음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남북통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담겨있다. 회개와 용서를 통한 사랑의 생활과 믿음의 기도로써 민족화합과 통일을 기원하자. 일제의 손에서 우리에게 광복을 주신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며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용서하셨듯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며 분노와 욕설과 악의를 내어버리라고 한다.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가 용서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의 어떤 주민이 “남한과 미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이대로 폭삭 망하는 것이 낫겠다.” 한 기사는 그들 또한 우리를 두려워하고 못 믿고 용서 못 할 자들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북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 복지와 평화 그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안보 의식을 굳게 가져야 한다. 그러나 상호 용서를 통해 민족이 화해할 때 그 이상의 안보와 평화는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먼저 마음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복음: 마태 18,19-22: 기도와 용서

 

복음에서는 기도와 용서를 가르치신다. 기도는 통일과정에 필요한 교회의 역할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선택이다. 기도하면서 남북의 화해를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우리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화해하지 못한 형제가 있으면, 이 미사의 은혜로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도록 하자.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하고 또 화해하지 못하고 끝내 이 세상을 떠나보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기도하던 중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와 화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냥 모른 척 부딪히지 않고 관심 두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와 화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랑하는 아드님을 통해서 나를 용서하셨고, 그런 나를 받아들여 주신 하느님 앞에 나는 그를 더는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맞대고 손을 먼저 내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이 열리기를, 용기가 생기기를 기도하였다. 하루 이틀 미루던 중 갑자기 떠나버린 그를 앞에 두고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어리석게도 ‘내가 화내는 이유는 너무나 정당한데 왜 내가 먼저 화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꾸 던졌던 내게 하느님은 아무 말 없이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나를 용서해 주시지 않았는가?” 하였다. 기회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은총의 때를 잘 알고 그 순간에 우리는 용기를 내어서 다가가야 할 것이다.

 

별 뚜렷한 근거 없이 낙관하는 통일관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장벽에 좌절한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빼앗아 간다. 우리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통일을 이루어 주시도록 겸손과 인내로 기도하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랑의 생활할 때 통일은 성큼 우리에게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가 서로 용서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우리 신앙인들이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먼저 화해하지 못하고 일치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북이 통일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먼저 우리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해, 그래서 일치되도록 노력하자. 이것이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항상 하느님의 일,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을 선택하여 실천하는 삶으로 우리나라의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결심하며, 오늘을 살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