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예수 성심 대축일] 예수 성심, Paradigm of Pascha

수성구 2022. 6. 24. 05:56

[예수 성심 대축일] 예수 성심, Paradigm of Pascha

 

예수 성심, Paradigm of Pascha

에제 34,11-16; 로마 5.5-11; 루카 15,3-7

예수 성심 대축일; 2022.6.24.; 이기우 신부

 

1. 오늘날 교회에서 잊혀진 언어, ‘파스카’

오늘,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바,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이 유언의 말씀은 공생활 동안 행하신 수없이 많은 일들을 기억하라는 말씀인 동시에 그 일들을 행하신 그분의 마음까지 기억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을 기억하지 못하면, 일에 대한 기억과 행함은 반쪽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고 진정성이 담기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마음도, 일도 기억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미사만 봉헌하면 그분의 파스카 과업은 잊혀지고 말 것이 자명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파스카’란 말이 전례 안에만 남아 있게 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예수 성심을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일들은 모두 파스카 과업이었습니다. 

 

2. 파스카는 곧 부활 신앙으로 실현된다

예수님께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도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요시아 임금이 단행한 전례개혁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 전례개혁의 최대 업적이 파스카 축제를 민족 최대의 명절로 복원시켜 놓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는 놀라운 업적을 기억시키고자 모세가 제정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도 갈릴래아 지방에서 공생활의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부흥만을 기대하여 개력된 요시야의 파스카 축제에 더하여,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의 의미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세상의 죄를 없애고자 하는 더욱 보편적인 지향으로 개혁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사의 지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예루살렘에 살던 토박이 지지자를 시켜서 방을 마련해 놓으셨고 만찬 준비까지 시켜놓으셨습니다. 그가 ‘물동이를 지고 가던 아무개’(마르 14,13; 루카 22,10)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 놓으신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일에 맞추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당신께서 하신 일들을 계승하라고 당부하시고 이 자리에서 성찬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유언하신 말씀에는 그분의 공생활에 비추어 다섯 가지 중요한 파스카 과업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3.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신 유언에 담긴 첫째 의미는 당신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끄신 분이 성령이시니, 제자들도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고향인 나자렛의 회당에서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성령께서 당신에게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당신의 소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당신께서 메시아로서 행해야 할 파스카 과업의 초점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이루어 질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후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셨고, 이로써 제자들은 그저 듣고 배우기만 하던 처지에서 그분처럼 행할 수 있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4.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주인공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당부하신 유언의 둘째 의미는 당신께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행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가난한 이들을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대우하여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대놓고 무시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던 그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웃음과 행복을 나누어주셨고, 위로와 치유와 안식을 선사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던 그 정성으로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새 하늘을 여시어 새 땅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그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분을 모함하고 시기하며 급기야 죽일 음모까지 꾸미며 적대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항하여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장차 교회를 이룰 주춧돌을 마련하시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이 파스카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아둔한 모습으로 자주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몰이해 자체가 예수님을 힘들게 했지만, 그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려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고,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 묻거나 따지지 말고, 치유하고 위로하여라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의 셋째 의미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되, 실질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고통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치유와 위로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는커녕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즉, 육체적인 질병이나 장애 또는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기도 했고, 무시당한 나머지 극심한 소외감으로 억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고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치유와 위로의 복음선포 과정에서 숱한 기적들이 일어났고 지옥과도 같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해방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눈먼 이가 보기도 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기도 했으며, 앉은뱅이가 걷기도 하였습니다. 나병이나 중풍을 앓던 이들이 깨끗하게 낫기도 했습니다. 또 자식 때문에 슬퍼하던 어버이들을 보고 함께 슬퍼하시던 그분은 죽을 지경으로 위독하거나 심지어 이미 죽은 아들딸들을 다시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치유와 위로의 체험을 받은 이들이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을 생생하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기꺼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들이 사도들과 함께 새로운 아나빔으로서 교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불쌍한 자선 대상으로만 대하셨거나 또는 이유를 묻거나 사정을 따지셨었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부활하신 후에 천사를 통해 가난한 이들이 사는 갈릴래아로 가라고 제자들에게 전하셨던 것입니다.

 

6. 악에 저항하고 해방시켜라

유언의 넷째 의미는 복음선포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던 공생활 동안에 이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하려 한 배후세력은 사탄이었습니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은 적대자들의 배후에서도 사탄이 조종하고 있었거니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그분을 유혹하다가 실패했던 바로 그 사탄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마귀들린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분은 정면으로 맞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마귀에 들렸던 많은 이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이런 구마의 복음선포는 역대 어느 예언자들도 하지 못하던 기적이었는데, 적반하장 격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마귀의 편에 서서 그분이 마귀들렸다고 모함을 해 댔습니다. 하지만 마귀에 맞서시던 예수님을 본 제자들과 군중은 예수님을 믿었으며, 특히 예수님 덕분에 마귀들렸다가 마귀로부터 해방된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넷째 의미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만 고유한 영적인 활동에 대한 말씀으로서, 마귀들이 저지르는 악에 단호히 맞설 것과 마귀들린 이들을 만나면 마귀를 쫓아내서 그 사람을 영적으로 해방시켜 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며 하지 않으면 마귀를 결코 쫓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마귀와 대적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7. 하느님께로 돌아온 이들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다섯째,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과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 마을에까지 그들을 파견하시어 당신이 하시던 복음선포 활동을 사람들 안에서 하게 되자, 함께 하시던 성령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터득했습니다. 한 번은 열두 명, 또 다른 한 번은 일흔 두 명을 파견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이나 권세를 부리던 사두가이들은 스승도 무시했던 판에 그 제자들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일 리가 없이 거부했지만, 이 복음을 받아들인 가난한 이들이 많이 하느님께로 돌아왔고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렸던 양 한 마리를 되찾은 목자의 심정으로 기뻐하셨고, 이 기쁨을 제자들도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에서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쁨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복음을 들은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난 이들을 기쁘게 맞이해 주면, 그들이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복음화시킬 것입니다. 체험으로 얻은 믿음이야말로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8. 예수 성심으로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라

이러한 다섯 가지 파스카 과업의 특징 안에 예수 성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이들이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었고, 이 교회가 파스카 과업의 소명을 받은 메시아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성심을 맑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교회가 교회답게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예수 성심은 파스카 과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