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수성구 2022. 6. 22. 06:35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2열왕 22,8-23,3; 마태 7,15-20 /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2022.6.22.; 이기우 신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기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임금은 요시야인데, 그는 후대의 역사가들이 평가할 때 남유다왕국을 다스렸던 역대 임금 가운데 3대 성왕(聖王)에 꼽힙니다. “그는 백성을 회개시켜 바르게 이끌었고 혐오스런 악을 없앴습니다. 그는 자기자신도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였고 무도한 자들이 살던 시대에 경건함을 굳게 지켰습니다”(집회 49,1-3).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나오지 않았다”고도 평가하였습니다(2열왕 23,25; 2역대 34,2). 

 

  이스라엘 역사에서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요시야 임금은 다윗의 정통신앙을 본받아 오직 야훼 하느님을 향한 전폭적 의탁과 말씀에의 순명을 자신이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는 통치 12년째에 이르러, 우상을 섬기던 산당과 나무로 만든 아세라 신상과 돌로 된 신상과 쇠로 주조한 신상들을 모조리 치우면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본격적으로 정화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2역대 34,3-7).

 

  그러다가 통치 18년째에 그는 그 마무리로 성전 보수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사제 힐키야는 야훼의 성전에서 헌금을 꺼내다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서’를 발견합니다(2역대 34,14 참조). 이 사실은 곧바로 요시야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그 율법서는 그의 면전에서 낭독되었습니다. 요시야는 그 율법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참조: 2역대 34,19). 왜 그랬을까요? 그 율법서에 다음과 같이 서슬 퍼런 경고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는 너희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신들 가운데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 계시는 주 너희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주 너희 하느님의 진노가 너희를 거슬러 타올라, 너희를 저 땅에서 멸망시키시는 일이 없게 하여라”(신명 6,14-15).

 

  그리하여 요시야 임금은 우선 백성들을 모아놓고 일종의 계약 갱신식을 성대하게 치루었습니다(참조: 2열왕 23,2-3 참조). 이어서 곧바로 나머지 산당들과 우상 신전들까지 대대적으로 정화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그들 선조들의 하느님을 더 이상 배신하지 않게 되었습다(참조: 2역대 34,33). 나아가 요시야 임금은 ‘계약의 법전’에 기록된 절기를 꼬박 챙겨서 지키는 전례개혁을 단행했으니(참조: 2열왕 23,22-23), 그 대표적인 사례가 ‘파스카 축제’였습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민족을 해방하여 주신 하느님을 기리는 과월절 축제가 대대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철저한 요시야 임금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대부터는 흐지부지되는 바람에 백성의 광범위한 회개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예수님께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도 같고, 포도밭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와도 같은 민족의 통탄스런 역사를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민족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든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로 시작하신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이 이 땅에 자생적으로 세워졌지만 곧 이어 박해를 받아야 햇습니다. 믿는 일이 죄요,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임금을 반역하는 죄로 간주되었던 이 엄혹한 시절을 무려 백 년 동안이나 겪고도 살아남아 이후 또 다른 백 년 동안에 큰 나무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동안 이루어진 근현대 민족사 이백 년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그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았던 착한 백성을 괴롭히고 죽이느라 국력을 소진한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멸망하더니, 지난 한 세기 동안 국운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대한민국도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식민지 노예살이의 쓰라림, 동족상잔 전쟁의 아픔, 동족 독재자에게 억눌리던 고통,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안간힘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와 산업화의 이 모든 노력을 합하여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할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강대국들이 함부로 우리 민족과 교회의 운명을 흔들 수 없을 정도로 국력과 교세가 자라난 이제 교회도, 민족도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공동선에 따라서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때가 되었고, 우리 교회도 박해 받을 걱정 없이 민족의 공동선에 투신할 때가 무르익은 것입니다.

그러자면 냉전 구도에 갇혀 분단된 군사 분계선을 걷어냄으로써 군사적 대결 시대를 끝내고 남북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일이 남북 정부 모두와 민족 모두가 합심하여 맺어야 할 열매라면, 이를 민족의 화해와 민족 복음화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일 것입니다. 이제 바닥을 치고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아직 올라가야 할 목표가 이처럼 뚜렷한 우리 민족과 교회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푸른 신호등이면서도 동시에 붉은 신호등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