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수성구 2022. 6. 21. 02:43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2열왕 19,9-36; 마태 7,6-14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22.6.21.(화)

 

  오늘 독서에서 아시리아의 산헤립 임금은 남유다왕국 히즈키야 임금에게 위협해 보았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버티고 있던 남유다왕국에서 히즈키야는 하느님께 기도하며 매달렸고, 하느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아시리아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2열왕 19,35). 

 

  여러 강한 부족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가나안 땅에 유다인들이 어렵사리 세운 통일 이스라엘왕국은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여러 강대국들과 남쪽의 이집트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두 문명권 사이에서 때로는 문물을 주고 받기도 했지만 침략과 정복을 당하기도 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약소국의 생존조건은 명확했으니, 그것은 내치(內治)를 안정시키고 외교와 국방은 튼튼히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 이스라엘 왕조에게 중요했던 사항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지배층이 백성을 돌보는 목자 역할에 충실하고, 백성이 단결할 수 있도록 우상숭배 풍조를 근절시키며 공정과 정의를 살아있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목자의 역할에서 최고선의 가치를 지킬 수 있고, 공정과 정의를 살아있게 함으로써 공동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으면, 남과 북의 강대국들이 함부로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수님께서 활약하시던 당시에는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속주로 삼아 식민통치를 하던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문명권 세력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새로이 강대국으로 떠오른 로마 문명권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암담한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은 잽싸게 로마의 권세에 기대어 백성을 억누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바빴습니다.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다면 민족 공동체의 대의명분이나 하느님께 대한 신앙 따위는 얼마든지 내버려도 상관없다는 태도였습니다. 

 

  하느님의 최고선과 공동체의 공동선이라는 가치 대신에 현세적 정치권력과 경제적 기득권이라는 힘을 우상처럼 숭배하던 이들 로마, 사두가이, 바리사이 등 세 부류의 세력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한껏 대결적인 자세를 견지하셨습니다. 이를 잘 나타내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개들에게는 거룩한 것을 주지 말아야 하고, 돼지들에게는 진주를 던져주지 말아야 한다”(마태 7,6). 

 

  이 말씀이 외부의 악한 세력에 대해서 신앙과 최고선의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는 당부라면, 황금율의 말씀은 제자들이 공동체 내부에서 지켜야 할 공동선 가치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최대한은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바를 우리가 먼저 남에게 해 주라는 것이고, 그 최소한은 남이 우리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를 끝까지 우리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황금율의 최대한은 공동체 내부 질서에서 적용되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희생과 섬김과 겸손의 성혈 신심이 여기에 적중합니다. 황금율의 최소한은 공동체 외부 질서에 적용되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 주변 4대 강대국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녘 동포들에게는 황금율의 최소한이 아니라 최대한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갈라진 겨레요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민족 공동체 안에서 이 가치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느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 특히 갈라진 겨레 사이의 화해를 도와주시고 일치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나 자신 때문에 또 나의 종 다윗 때문에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고 하시던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북녘 동포를 포함한 민족 공동체 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가치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라는 최고선을 지키고 증진시켜야 하고, 인간 존엄성의 공동선 가치를 모든 이들에게 고르게 보장해 주어야 하면서도 스스로 이 가치를 권리로 누릴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최근의 코로나 방역 위기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미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시선으로는 선도국의 지위까지 오른 명품국가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 같은 나라들에게도 하지 않는 기대를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명예롭게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 전반이 세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작금의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안에 남아 있는 가난한 이들의 문제와, 그리고 냉전 구도를 지속하고 있는 남북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민족 화해를 이루는 문제가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최고선과 공동선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면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사회의식과 민족의 화해를 이룩해야 할 역사의식을 우리 신자들이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선한 시민들과 함께 앞장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과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좁은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