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혈 신심의 봉헌으로 민족 화해를 앞당깁시다

수성구 2022. 6. 20. 05:04

성혈 신심의 봉헌으로 민족 화해를 앞당깁시다

2열왕 17,5-18; 마태 7,1-5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2022.6.20.;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 보면, 북쪽에서 일어난 아시리아가 삼 년 동안이나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사마리아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고, 그 대신 사마리아에는 아시리아 주민들을 집단 이주시켰습니다. 이는 아시리아가 부족한 인력을 재배치하는 한편, 점령지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사마리아를 비롯한 북이스라엘 왕국에는 우상숭배 풍습이 들어왔고, 이주당한 사마리아 주민들은 그곳에서 혼혈 정책에 순응하여 우상숭배 풍습에 적응하거나 또는 순혈주의적 태도로 해외 디아스포라를 이루어 유다인들의 전통을 이어나가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았습니다. 아무튼 북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던 열 지파들은 혈통상으로는 나라 안팎에서 순수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남유다 왕국을 이루었던 유다와 벤야민 지파 그리고 사제 직분을 맡았던 레위 지파의 일부 정도만 순수한 혈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다인들은 순혈주의를 고수하려고 하고, 우리 민족도 예전부터 단일민족이라고 자부하지만, 민족의 정통성에 있어서나 하느님의 관점에서나 그리고 실제 인류 역사에 있어서도, 혈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입니다. 하느님께서 노하신 것은 혼혈이 되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하셨던 조상들의 전통을 저버리고 우상숭배 풍습을 따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혈통상으로 별 의미가 없어진 열두 지파 체제 대신에 당신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는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다운 질서를 세우기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공동체 안에서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제 막 열두 제자의 공동체를 시작한 참이어서 각자의 기준대로 다른 제자를 심판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공동체에는 공동선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질서가 상존합니다. 이 기준이 존중되지 못하고 각자가 다른 구성원을 심판하게 되면 공동체의 질서가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함부로 심판하지 말 것과,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내려는 겸손을 더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 안에서 겸손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생애 말기에 서로가 서로를 섬기도록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겸손에서 섬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신 것입니다. 이 상호 섬김에 필요한 희생 정신의 본을 보여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희생을 앞두시고 성찬례를 제정하셨으며, 함께 나누어 먹을 빵을 당신 몸이라고 부르시고 함께 나누어 마실 포도주는 당신 피라 부르시며 축성하셨습니다. 이 빵과 포도주의 축성 제사는 고스란히 실제로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는 죽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시어 피를 흘리심으로써 당신 제자들과 새 하느님 백성의 죄를 씻어 주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묵시 5,9). 그리고 그분의 뒤를 따라 순교한 신자들도 어린양의 피로 자신들을 깨끗하게 정화시켰다고 알려주었습니다(묵시 7,14). ‘어린양의 피’가 상징하는 바 진리를 위한 희생이야말로 신앙과 공동체의 중심 가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도 피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뇌와 심장에 피가 잘 돌지 않으면 치명적인 마비 증상이 발생하게 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또 교회의 여러 공동체들 안에서도 피가 잘 돌아야 합니다. 그 피는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희생이요, 섬김이며, 겸손입니다. 이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성혈 신심입니다. 피는 깨끗해야 하고, 순환되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와 이에 속한 공동체들이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희생과 섬김과 겸손으로 나타나는 성혈 신심이 깨끗해야 하고 또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합니다. 

 

  유다 민족이든 한민족이든 또 다른 민족이든지 간에 인류의 역사에서는 혈통이 아니라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하느님께서도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듯이, 교회 안에서도 또 작은 공동체 안에서까지도 중요한 것은 희생과 섬김과 겸손의 문화입니다. 서열이나 직급이나 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꼴찌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첫째가 되리라고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갈라진 민족 공동체가 다시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인 6월 25일이 엿새 앞입니다. 지난 정권 시기에 진전이 있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아쉬움을 느낍니다만, 희생과 섬김과 겸손의 성혈 신심이 믽녹 공동체를 위해 우리 교회가 바치는 값진 봉헌 제물이 되어서 민족 화해와 일치의 열매가 하루빨리 맺어지기를 염원하며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권고한 아홉 가지 기도 지향을 소개합니다. 

 

1.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

2. 북한과 미국,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3.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하여

4.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5. 남과 북의 복음화를 위하여

6.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하여

7. 한반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8. 평화의 일꾼들을 위하여

9.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