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22. 6. 21. 02:39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복음: 마태 7,6.12-14: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6절) 여기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소중히 여겨야 하는 모든 영적인 것들이다.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개 안에 담겨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드러낼 때,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명백하게 중요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개로 배를 불리고 어떤 이들은 돼지로 배를 불린다. 나는 어떠한 것으로 풍요를 노력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12절) 예수님께서는 이 한 마디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요약하신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란다면,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동료가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네 이웃에게 해주라고 하셨다. 이보다 짐스럽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공평한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몰랐다고 핑계 대며 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렇게도 평범한 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모습은 아니다. 복음을 아는 우리의 모습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그만큼 성숙하는 것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셨고 산상설교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이들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이 편안한 멍에와 이 가벼운 짐을 마다하는 사람이 많아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힘들고 문은 좁게 느껴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우리는 하느님께서 남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그 짐은 은총이기 때문에 가볍고 기분 좋은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좁고 비좁은 길을 편하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은 그것이 문이면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하셨다. 그 길이 좁아 보이는 것은 주님의 멍에 곧 계명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기꺼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안에, 곧 성령 안에 머물 수 있을 때만이, 그 계명을 따를 때만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다. 주님의 뜻을 오늘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