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다! 꼰대다!
철없다! 꼰대다!
(정명지)
초임 교사 시절. 교장의 교지발간사와 졸업식 축사를 막내 국어교사인 나에게 쓰라고 했다.
그건 교장 선생님이 쓰셔야지요. 교장이 아닌 제가 어떻게 글을 대신 쓰나요..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무안한 낯빛으로 변하고 선배교사들은 내게 눈짓하며 말렸다.
교무회의가 끝나고 선배 교사가 한마디 했다.
그리 말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까지 다 큰 줄거리만 알려주고
그걸로 막내 국어 교사가 써왔어요.
게다가 지금 교장은 과학 전공자라 글쓰기도 서툴러요
그래도 나는 어찌 자기 생각을 남이 쓰느냐..고집했다.
며칠 후 교장 선생님이 글을 써서 내게 내밀면서 좀 손봐달라고 했다.
글의 앞뒤가 맞지 않아 도저히 그대로 실을 수가 없어 또 일격을 가했다.
제가 써드리는 것이 낫겠어요.
지금도 오십여 년 전 그때의 당혹스러운 교장 선생님 얼굴이 선하다.
거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분 나이가 되어서다.
고인이 된 그분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사사건건 선배 교사들과 부딪쳤다.
집단 독서를 시키자는 의견에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왜 한 가지 책만 읽게 하느냐...고 반대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다수인 그들의 생각대로 진행되었고 나는 번번이 좌절했다.
때로는 도저히 이런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직장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어느새 내가 윗세대가 되었다.
후생가외라더니 대학을 갓 나온 후배들은 참으로 빛나고 새로웠다.
그들에겐 우리 세대가 갖지 못한 당당함과 신선함이 있었다.
실제 문제에 닥쳤을 때 그들의 격식 파괴와 당돌함에 놀라기도 했다.
내 생각은 절대 옳고 당신들은 구습에 젖어서 개혁을 모른다는 주장을
우리 때보다 더 솔직하고 강하게 표출했다.
예전의 나는 말씨도 더 공손했고 더 참으며 많이 아파했던 것 같은데
그들은 그런 아픔 없이 자기 의견과 이익을 주장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젊은 세대가 주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그들은 우리를 불의에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낡은 세대로 보는 것 같았다.
하루는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배워가는 사고를 가르치려는 내게 신임교사 나섰다.
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한가지 책을 읽기려고 합니까?
아. 예전에 내가 한 말이었다.
옛 선배들을 찾아가 제가 부족했습니다..말씀드리고 싶었다.
세대 차이는 세대 간이 아니라 사람의 삶 안에 있는 것이구나!
선거 때면 나는 아버지와 갈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조건 한인물만 지지했다.
그때는 부녀관계가 엄격해서 내 주장을 퍼지는 못하고
현명하신 분이 어찌 저리 정의감은 없으신가.
먹고 사는 게 다인가...하며 아버지를 내심 낮게 보았다.
아버지는 그의 장점만 보고 나는 그 사람의 잘못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내가 아버지 세대가 되자 아버지 생각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때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경청했다면 아버지도 나도 극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을...
나이 든 세대는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하며 익어온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신세대는 그것을 노인의 맹목적인 추종으로 보곤 한다.
그래서 서로 철없다. 꼰대다...하고 나이도 어린 게 무엇을 아느냐.
아무것도 모른 노인네..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 성을 쌓고 있다.
서로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하면서 답답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은데.
신세대는 하늘을 향해 새 가지를 뻗는다.
오래 산 이들은 땅속으로 뿌리를 넓혀 나무를 지탱한다.
이 두 세대의 귀한 가치가 함께 펼쳐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래서 모두 서로에게 소중하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