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수성구 2022. 5. 30. 06:45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사도 19,1-8; 요한 16,29-33 / 부활 제7주간 월요일; 2022.5.30.; 이기우 신부

 

  오늘 우리는 물과 불의 세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의 세례란 요한이 유다 광야에서 거칠고 소박한 생활양식으로 살면서 세상의 죄에 물든 유다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요르단 강물로 베풀었던 세례입니다.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여 파국이 임박했으니 물로 죄를 씻음으로써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요한은 촉구했습니다. 

 

  불의 세례란 예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겪으신 십자가와 내려주신 성령을 아울러 뜻합니다. 그분도 요한이 베푼 물의 세례를 받으신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한이 촉구했던 의로움을 전제로 하셨지만, 그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그들의 아픔을 낫게 해 주고 마귀 들려 속박당한 그들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러한 치유와 구마의 활동은 그 당시 종교와 사회의 체제에서 소외시킨 이들을 먼저 해방시키심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시려던 사랑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셔야 했지만, 이 불의 세례는 사회 비판을 넘어선 창조요 윤리적 회개를 넘어선 사랑의 실천으로서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의 사회적 실체였습니다. 

 

  어제는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만, 주님 승천 대축일에 가렸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서 복자품에 오르신 이 124위의 순교자들의 순교 행적을 기리는 데 있어 언급해야 할 중요 사건은 조상제사금지령과 진산 사건입니다. 그런데 조상제사금지령에 순종하여 치명한 윤지충과 권상연 등의 순교자들은 복자품에 올랐으나, 이들에게 천주교를 가르치고 전해주었던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등은 조상제사금지령을 비판하는 바람에 배교자가 되었습니다. 

 

  본시 이 금지령은 1715년과 1742년에 교황청에서 중국 교회에 내린 칙서를 구베아 북경 주교가 1790년에 조선 천주교회에도 적용한 것이었고, 다시 1939년에 교황청에서 조상제사를 허용하는 훈령을 내리는 바람에 취소된 것입니다. 원인이 무효가 되었으면 결과도 무효가 되는 법이고,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이치에 따라서, 조상공경을 우상숭배로 오해했던 무지를 저지른 교황청에서 조상제사금지령 비판에 따라 배교자의 누명을 쓴 이들에게 합당한 명예 회복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향후 아시아 선교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로서는 문제를 제기할 뿐, 이를 해결해야 할 몫은 교구청과 교황청의 관료들의 것입니다. 단지 배교자의 누명을 쓰고서도 죽는 순간까지 한결같이 신앙을 실천하고 또 치열하게 신앙을 증거하려 했던 이들의 삶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 가운데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당하는 형벌을 받고 해양 생물을 관찰하여 기록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하여 세상에 남겼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바닷가에 사는 어민들이 고기잡이 방법이나 어망 만드는 방법,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고 가공하는 방법 등을 잘 몰랐고, 따라서 물고기를 많이 잡지도 못했던 데다가 그나마 잡은 물고기들에 대해서는 바다가 국가 소유라는 이유로 일일이 세금을 매겼으므로 어민들의 생활이 매우 궁핍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양 생물의 모양, 색깔 등을 자세히 관찰하는 한편 때로는 해부를 해서라도 그 구조와 습성까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등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 그는 섬사람들이 들려준 해양 생물에 대한 지식, 물고기 잡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보완함으로써 그 어부들의 궁핍한 생활상에서 벗어나 더 잘 수 있는 방법을 연민과 열정으로 고민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해양 생물을 네 종류로 나누어 찾아보기 쉽게 분류하였습니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류, 비늘이 없는 물고기류와 껍질이 딱딱한 해양생물류, 그리고 바다에 그 근처에 사는 벌레, 새, 식물 등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을 조사하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바다 생물, 즉 물고기와 해초류에 대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또한 오징어의 먹물로 붓글씨를 쓰거나 민어의 부레를 아교로 쓸 수 있다는 기록으로 실생활에 이로운 정보도 남겼습니다. 그는 물고기마다 맛이 다르고 효험도 다르므로 언제 잡은 것이 가장 좋은지, 어떻게 하면 상품으로 팔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주자학을 숭상하던 선비들은 계시 진리에 의해서나 과학적 증거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의 사색만으로 우주의 이치나 인간 본성의 본질 등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있던 반면에 그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의 삶을 중시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태도로 2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손색이 없는 해양 생물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 ‘자산어보’를 펴낸 것입니다. 정약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임금 대신 백성이 주인이요 주자학에 따른 신분 차별도 없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행적은 배교자의 소행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그의 애민사상과 실사구시적 학풍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의 세례에 따라서 신자들이 세상의 죄악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불의 세례에 따라서는 신자들이 어떻게 사랑과 십자가와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하며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른 공동체 형성의 관건은 무엇인지, 공동선에 대한 관심에로 나아가는 일에는 어떠한 순서와 체계가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실사구시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나아가야 할 방향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