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모찬송의 메시지

수성구 2022. 5. 31. 02:00

성모찬송의 메시지

스바 3,14-18; 루카 1,39-56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2022.5.31.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음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으로 성령을 가득히 받아 구세주를 잉태하신 마리아께서는 그 즉시 엘리사벳을 방문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구세주 잉태를 예고하던 천사가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잉태한 엘리사벳의 예를 들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일러주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나자렛 집을 떠나 걸어서 사흘 거리에 있는 유다 산악 지방의 즈카르야의 집으로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문안 인사를 받자마자 성령으로 가득 찬 인사말로 응답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성모송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이에 대해 마리아는 아버지 요아킴과 어머니 안나로부터 성모찬송을 읊어 화답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즉석에서 지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민족적 숙원이 담겨 있는 심오한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는 마리아의 개인적 기도가 아니라 요아킴과 안나를 포함한 아나빔들의 기도였을 것이고, 이는 아마도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서 외울 수 있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과연 그 내용 중에는 아나빔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하느님께 탄원하던 세 가지 중요한 기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하는 이 찬송은 당시 유다인들의 종교를 지배하던 사두가이들의 교만한 행태를 하느님께서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한편, 사람들이 새롭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제사를 드리는 질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파 사제들이 장악하던 성전을 정화하시고, 사람들 사이에서 “영과 진리로”(요한 4,23) 하느님께 제사드리는 길을 치유와 구마 기적 그리고 가르침으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하는 찬송에서는 당시 이스라엘을 군사력으로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던 로마인들과 이에 부역하여 백성을 억누르던 지배층, 즉 헤로데의 당파와 바리사이들을 하느님께서 심판하시어, 사람들이 새롭게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정치질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서로에게도 발을 씻어주라고 유언하였고, 또 이를 잊지 않도록 성체성사를 세우시어 교회가 섬김의 정치의 모범이 되라고, 그래서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하는 찬송에서는 식민통치와 이에 부역하던 무리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수탈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된 가난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실 새로운 경제 질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자들로 하여금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이 없게 하는 공동생활 양식을 교회의 원형으로 제시하셨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무신론적 성리학 이데올로기로 하느님께 대한 제사와 기도를 금지하고, 신분 차별로 백성을 억압하며, 무한 착취로 백성을 수탈하던 당시 조선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아예 이렇듯 부패하고 낡은 질서 대신에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서로가 서로를 교우라고 부르며 섬기면서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서로 가진 것을 나누던 교우촌을 세워 나갔지만, 정약용은 조상제사금지령을 비판하여 배교자 누명을 쓰고 또 이벽의 뒤를 이어 준성직자단에 참여했던 역할 때문에 유배형을 받아 강진 땅으로 가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치열한 사색과 연구로 무려 5백여 권이나 되는 저술을 펴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저술이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그리고 ‘흠흠신서’(欽欽新書)입니다. 나머지는 강학회에서 배운 천주학의 관점에 따라서 주요 유학 경전을 모조리 재해석해 놓은 저술들인데 비해, 이 세 저작은 정치와 경제 및 행정 그리고 인권과 사법질서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후대의 교회와 세상을 위한 정약용의 고언이요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써 놓은 저술들에 담긴 만큼의 관심도 우리 사회의 공동선 현실에 대해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공의회 이후 복음선교를 주제로 열린 주교 시노드의 건의를 받아 바오로 6세는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1975)를 반포한 바 있는데, 여기서 기존의 전교 개념을 획기적으로 복음적으로 전환시키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선교는, 기존의 교리 교육과 성사 활동이라는 종교적 국면과 함께 사회를 복음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하여 공동선을 증진할 수 있는 사도직 활동의 국면도 병행해야 비로소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17-19항). 

 

  교우 여러분!

이 같은 바오로 6세 교황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정약용은 배교자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습니다. 민족과 교회에 남긴 정약용의 예언과 발자취를 이제라도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