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의 이야기

여소야대 & 피그 말리온 법칙the law of yeosoyadae & pig malion

수성구 2022. 4. 16. 15:30

여소야대 & 피그 말리온 법칙 

the law of yeosoyadae & pig malion

오늘은 햇살이 봄을 부르곤 한다.

어저께만해도 하늘이 흐릿하더니 오늘은 

부쩍 햇살이 나를 비춰주나 싶다.

The sky was blurred yesterday, and today I want the sunshine to shine on me.

그런데 나의 몸은 아직도 부실해서 내일 

부활 축일을 가서 드릴까 싶다.

보통 몸이 안좋은 분들이 미사에 "픽 픽" 쓰러지곤 

한데 난 그렇게 하지 않기를 내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무척 기도를 한다.

Usually, those who are not good are falling down "picpic" in Mass,

but I pray very much to God in my heart that I will not do so.

그래서 사람은 항상 기도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나 본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종교가있어서 기도 할 때면 먼저 

하느님을 찾고는 한다.

We are religious believers and when we pray, we first find God.

왜 그런말이 있지요, "피그 말리온 법칙" 이라는 말을 누구에게 

강의로 들은 것도 있는데 우리가 "간절히 바라면 무언가는 

반드시 이루어 진대"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종교가 있어야 되고 

그분이 예수님이건, 부처님이건 간절한 기도가 필요 하단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하면 무실론자들은 ㅋㅋ 거리면서 웃어 버리지만 

기도하는 마음은 누가 뭐래도 이루어 진다고 본다.

So when we pray, the agnostics laugh and laugh, but I think that the prayer is done by anyone.

이루어 지지 않을 땐 그 사람의 태도나 상황에 따라서 이루어 

지지 않을수가 있다지만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우리의 세상이 공존하는 가운데에 사람들은 뭐든지 자기의 

힘만을 믿고 살아 가기 때문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So in the midst of our world coexistence, people do not do anything because they believe in their own power.

그건 그거고 오늘은 아침에 중동에 한빛 성내과에 간거란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만약을 대비해서 약을 좀 가져 오려고 간거란다.

Tomorrow is Sunday, so I went to get some medicine just in case.

그래서 오늘은 좀 밥도 먹고 김치도 먹고 김부각도 먹으니 한결 

힘이 나지만 죽만을 먹다가 내배가 놀랐는지 몸이 조금 힘이 든다. 헤헤 

지금 율리안나는 자기 아저씨랑 같이 비슬산에 등산한다고 내게 

사진을 보내 주니 참 귀요미 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철닦서니가 없기도 한다 ㅋㅋ

Now Julianna sends me a picture that she is climbing in Bisle Mountain

with her uncle, so it is very cute and sometimes there is no iron cleaning.

그러고는 오늘의 복음에서 보면 

이 거룩한 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풍성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복음 말씀들은 아들과 성령과 함께 아버지께서 가지신 영원한 구원계획이 실현된

역사적, 예언적, 지혜의 말씀이다. 여기서는 중요한 것들을 보겠다. 안식일이 지났다.

이는 “하느님의 안식”(창세 2,4 참조), “일곱째 날”이다. 이제 “주간 첫날” 즉 “제8일”이 시작되었다.

안식일 다음 날로 표현된 이 8일은 상징적 숫자이다. 7은 충만을 의미하며,

1은 충만의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다. 이날은 계시와 역사의 마지막 날이며, 새로운 날이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첫째 날 계시하시고 행하신다( 창세 1,1-3; 에제 1,1).

또한 이날은 종말론적인 날이며, 더는 그 후에는 있지 않을 날이다. 영원히.

 

주님께 유일하게 충실했던 여인들이 등장한다. 남자들, 특전을 받은 사람들,

선택되고 축복받은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라고 마르코 14,50은

상징적 문헌을 보고하고 있다. 여인들은 이 순간부터 공동체와 관련된 의미에서 항상

주님 부활의 표징에 대한 수탁자들이 된다. 부활 복음은 오늘 이 밤

그리고 항상 무엇보다도 먼저 충실한 여인들을 돌아보고 그다음 남자들을 돌아보게 된다.

사도들이 세상에 대해 홀로 전적인 증거자들이 되더라도 말이다(사도 1,1-4.21; 10,41).

그 기능에 있어서는 같다.

묵은 옛 어두움은 여명 앞에 사라져 가고, 약속된 우리의 정의의 태양(말라 4,2:불가타),

빛나는 아침의 샛별이(묵시 22,16) 떠오른다. 주검에 발라 시체가 천천히 썩도록 하는

묵은 향유가 준비되었으나, 더는 필요 없게 되었다.

여인들은 무덤을 보고, 향유를 바르려고 가고 있다.

그러나 돌은 이미 치워졌고, 무덤은 비었으며, 시체는 거기에 없었다.

여기서 여인들은 위대한 神現을 체험한다. 천사 혹은 부활의 천사들을 만나게 된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말한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5절)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인간 존재가 완전히 변모하는 것이다.

부활은 승리의 신비이며, 죽음과 모든 부패의 힘에 대한 완전한 승리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살아나다, 되살아나다는 말의 의미이다.

 

우리가 전할 부활의 신비도 우리 자신이 지고 가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활 메시지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5절)

이 미사 중에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부활의 신비를 힘차게 선포하는 삶이

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제15화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의 헌법적 요청

 

올해의 봄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새로운 정치적 구도가 시작되어

만물과 사회의 재생이 겹치는

생동감 넘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 나라의 정치제도와

헌법상황에 관하여

다음의 글을 올려 봅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의 헌법적 요청

대선이 끝나고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환호하지만

아직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임명되는데

국회는 현재 여당이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하더라도

국무총리가 없으면

국무위원을 임명할 수 없으므로

조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무총리가 없으면 각부 장관이 없이

대통령만 덩그러니 있는 상태인데

필자의 기억상 아마 DJ 취임 초기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포기하고 아예

차관정치를 하면 될까?

국정의 중요사항은 모두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장관만이 국무회의 멤버이므로

차관정치도 불가능하다.

결국 국정마비를 피할 수 없다.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당은 법률을 만들 수 없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입법사항이니 호언장담일 뿐

다수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입법부를 장악한

현재 여당은 마음대로 법률을 만들어

행정부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안 된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금 의석수로는 다수당인들

거부권행사를 넘어설

힘이 되지 않는다.

결국 양측 모두 새 입법을 할 수 없고

현재 법률 상태 하에서

다음 총선으로 국회구성이 바뀔 때까지

2년 동안이나 참고 살아야 한다.

현 상황에서 반드시 여야가

협치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이 지켜보는데 감히

새 정부의 시책에

국회 의석이 많다는 이유로

버틸 수 있겠는가고 외치겠지만

그간의 행적을 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그 정도에 호락호락 쉽게 넘어갈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우리 헌법이 이런 구조이므로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엇갈릴 때는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일종의 동거정부(cohabitation)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로스쿨에서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합치되는 한도에서만

미국식 대통령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선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제

혼내주겠다는 식으로 일관한다고

뜻대로만 될 상황이 아니다.

헌법이 정한 선을 넘으면

바로 위헌이 되고

이것에는 대통령 탄핵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 분야에도 현재 여당 측이 열심히

사람들을 챙겨넣어

오히려 잘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싫겠지만 현재 여당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심지어

그들이 원하는 인사를 포섭하여

함께 국정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05년 말 독일의 보수당이 신승하고

총리가 된 메르켈이

숙적 사민당과 대연정을 형성하였던

국외 사례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때 같아 보인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