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의 이야기

경상 북도 구미시 & 나의 새벽...

수성구 2022. 1. 3. 16:47

 

경상 북도 구미시 & 나의 새벽...

Gumi City, North Gyeongsang Province & My dawn.

 

하루가 참으로 잘도 지나가는가 보다 싶다.

I think the day is really going by.

이젠 나의 하루를 짚어 보는데 그리도 삶에 

용솟음 치는 나의 행위를 가지곤 한다.

사람이 자신을 비우고 나면 더 없이 정신적으로 

성장을 하는데 그럼으로서 타인의 모범적인 성공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When a person empties himself, he grows mentally,

and the exemplary success of others is in front of him.

내꺼 너무 탐하지 말고 서로 나누고 보탬을 주고 하면 

훨씬 자기의 과거 보담은 미래가 발전된다고 본다. 

그러고는 이젠 새해를 맞이 함으로 우리들의 생각과 모든 것이 

새로움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살아 가는 동안에 조금 미흡한 점이 있다 해도 사람이니깐 

이해하고 받아 들이면 된다.

Even if there is a little lack of things during your life,

you can understand and accept it because you are a person.

오늘은 새벽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새벽미사를 간것이다.

오늘은 늘 오는 자매들도 더러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공허한 분위기 속에 그래도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둔다고 우리 삐돌이 신부님 열심히 하신다.

이제 며칠이면 떠나시는 신부님이 그래도 마지막 열심과 

성의를 다하신다고 본다.

I think that the priest who leaves in a few days still does his last hard work and sincerity.

몇몇 안되는 신자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삐돌이 신부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성을 다해서 미사 참례를 하는 것 같다.

오늘 그렇게 새벽미사 마치고 집에 와서는 우리집에 부실 공사를 

한다고 어떤 아저씨가 온것이다.

근데 부실한 욕실에 천정을 뜯어 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

But there is no problem with the ceiling in the poor bathroom.

그래서 주인 교수님이 나보고 불안해 하지 마라 한다.

우리 주인 선생님은 지금은 "카톨릭 대학 교수"로 나가신다.

Our master teacher is now a "Catholic University Professor."

교수로 나가시면서도 아침 일찌가 운동을 하고는 우리집 앞에 

쓰레기 분리 수거를 다하고 출근을 한다.

그런거 보면 참 성실히 사시는거 같다.

지금은 "카톨릭 대학"이지만 우리 어릴때는 "효성여자 대학교"라한다.

It is now a Catholic University, but when we were young,

it was called "Hyo Seong-yeo University".

그러고는 아침에 그러고 시간 보내다가 시내 메트로 상가로 한바퀴 돌고 온것이다.

이렇게 잘도 돌아 다닌다.ㅋㅋ 헤헤 

오늘의 복음이랑께요.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 올랐다.

즈블룬땅과 납탈리 땅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 민족들의 갈랠리아,

어둠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빛을 보았다 한다.

On the way to the Zblun and the Nadtali lands, across Jordan, the Gallaria of these peoples,

the people sitting in the darkness, saw the light.

그때부터 예수님은 "회개 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한다.

허약한 백성을 모두 고쳐 주셨다 한다.

그리하여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모든 병자들 간질병자들,

모두 고쳐 주었다 한다.

그때부터 온 군중이 예수님을 따랏다 한다.

From then on, the crowds follow Jesus.

오늘의 복음이란지라요,ㅋㅋ 호호 

금오산 도립공원

금오산은 구미의 대표적인 산으로 1970년 6월1일 대한민국 도립공원 1호에 지정된 명산이다. 금오산을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했으니, 이러한 지명의 유래는 중국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문종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불교의 포교 및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다. 이는 금오산의 품격과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역사적 근거라 하겠다. 현재 불리는 이름인 금오산은 고려 후기부터로 추측된다. 금오산의 이름이 이 산에 금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육당 최남선의 학설에 의하면 이러한 설화는, 모계(母系) 씨족사회(氏族社會)에서 출중한 단군을 임금으로 모시는 데에 건국 신화가 필요하듯이, 위대한 인물에게 왕손의 칭호를 붙여야만 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곰은 ‘웅(熊)’이 아니라 ‘검’ 또는 ‘금’에서 오는 말로, 임금의 뜻을 가진 말이라 한 것처럼 곰의 후손설과 같은 의미, 즉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또 금오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굳이 ‘숭(崇)’자를 붙여 중국의 숭산에 비유한 것은 생김새가 비범한 데서 유래할 수도 있다. 금오산을 칠곡과 인동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거인산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와불산이라고 하였으며, 선산에서 금오산을 보면 끝이 뾰족하여 붓끝 같으므로 필봉(筆峰)이라고 불렀다. 또 개령 방향에서 보면 금오산봉이 도적놈이 무엇을 노리며 피신하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적봉(賊峰)이라 하였으며, 금산에서 보면 부잣집의 노적(露積) 같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峰)이라고 불러왔다. 인동에서 이 산을 보면 높은 사람이 관(冠)을 쓴 것 같아서 귀봉(貴峰)이라고 불렀고, 성주에서 보면 음탕한 여인의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淫峰)이라 호명하기도 했던 바 생김새와 관련된 수많은 이름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금오산은 동경 128.18°, 북위 36.05°, 구미시·김천시·칠곡군의 경계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976m의 노년기성 산지이다. 금오산의 지질은 주로 시생대와 원생대에 속하는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암석이 노출된 화강암이 많으며 화강편마암이 산재하고 있다. 현월봉·약사봉·보봉 등 해발고도 900m가 넘는 암봉(岩峯)들이 산지의 북동쪽과 북쪽을 에워싸고 있으며, 고도 800m 이상의 봉우리인 서봉과 남봉이 남쪽과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 해발고도 800m 위쪽으로 고위 평탄면이 나타나고 있으며 평탄면 상에 성안마을이 있다. 고위 평탄면 아래로는 급사면을 이루고 있으나, 동·서 사면의 하천은 짧은 유로를 가진다.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감입 하천으로 길고 깊어 그 유역에 도선굴·대혜폭포(명금폭포) 등 차별 침식에 의한 지형지물이 잘 발달해 있다.

금오산은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7월 경부고속국도의 개통과 더불어 교통이 더욱 편리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산 아래에서 대혜폭포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고, 산 위에는 길이 약 2㎞의 산성이 있다. 정상에 약사암과 마애보살입상, 중턱에는 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 등의 이름난 장소가 있으며, 산 아래에는 길재 선생의 뜻을 기리는 채미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산의 북동쪽 자락에 위치한 금오산저수지는 보트 놀이 등 수변 위락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금오산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등 풍부한 관광자원과 구미공단이라는 공원 이용객의 배출지가 공존하고 있어, 공원 조성에 큰 장점을 가진 곳이다.

 

금오산도립공원의 구역 범위는 구미시를 중심으로 서남으로 김천시 남면 일부와 동남쪽으로 칠곡군 북삼읍 일부를 점유, 구획되어 있으며 산상에서는 성내부락지(城內部落址)를 경계로 하고 있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산 33

#금오산도립공원


채미정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 정자 이름은 길재가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한 것을 중국의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채미정 뒤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 한 칸만 온돌방으로 꾸미고 방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또한 온돌방에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여 문만 열어 올리면 전체가 마루가 되도록 장치하였다.

건물 골격은 5량가에 겹처마집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에 자리 잡고 있다. 1977년에 전면적인 보수를 한 이후 현재는 잘 보존되고 있다. 구미 채미정과 같은 평면구조는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볼 수 있으나, 영남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이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249

#채미정


도선굴

도선대사가 도를 깨우쳤다고 전해오는 동굴로 대혜 폭로 우측 벼랑 중간에 위치한다. 굴 앞에 서면 멀리 구미공단, 낙동강, 해평의 냉산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도선굴

#도선굴


대혜폭포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에 자리한 대혜곡의 폭포. 금오산 정상 근처 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 또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 지방의 용수 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대혜폭포는 명금폭포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935년쯤 경상북도 도지사인 일본 사람이 이곳을 찾아 주변 경관과 물소리에 매료되어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차가운 기운에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사물은 희미한데,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라고 탄복하고 자기의 시상(詩想)이 사라지기 전에 석수(石手)를 불러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 새겼다고 한다. 그 후로 바위에 새겨진 이름이 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전해지면서 오늘날 명금폭포라고도 불리고 있다. 대혜폭포는 금오산 북측 대혜곡(大惠谷)의 중간 지점 해발 400여m 지점에 위치하며, 높이가 28m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은 사계절 변함이 없으며, 그 위력으로도 유명하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의 벼랑은 계곡을 흐르는 감입 곡류에 의한 침식의 결과물이다. 가파른 경사로 병풍처럼 보이는 계곡에는 겨우내 대혜골에서 흐르던 물이 절벽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혜폭포를 통과해서 하류로 흐르는 물은 남통천이라 불리며 금오산저수지의 수원이 되어 금오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에 위치한 대혜폭포는 그 자체로 등산객들에게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능선, 도선굴, 약사암 등과 어우러져 금오산 관광의 백미를 구성한다. 왼쪽의 짧은 능선과 오른쪽의 긴 바위 능선 사이에 패인 골짜기로 떨어지는 높이 28m의 대혜폭포는 여름철 강우량이 많을 때 보면 큰 폭포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내리며 부서지는 물보라와 폭풍 같은 냉풍이 주위를 시원하게 한다. 갈수기(渴水期)에는 떨어지는 물의 양이 극히 적어 물방울이 휘날릴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폭포 위에 폭포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대혜담이란 조절지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금오산도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현재 대혜폭포 부근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대혜폭포


금오랜드

각종 놀이시설을 갖춘 놀이동산으로 금오산 도립 공원 입구에 위치한다. 내부에 실내빙상장과 눈썰매장을 갖추고 있다.

위치 : 구미시 금오산로 341

#금오랜드


금오산성

고려 후기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으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다. 외성은 해발 약 350m에 위치하여 금오산 입구와 대혜폭포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노선 중간 지점에 있으며, 내성은 해발 약 850m의 성안 분지를 둘러싼 능선에 있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금오산(金烏山)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두었던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수축(修築)이 이루어졌는데, 『태종실록(太宗實錄)』에 1410년(태종 10)에 수축했다고 기록된 것이 있고,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선산부조(善山府條)에 1413년(태종 13)에 수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80여 년간 문헌상 기록이 없어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4년 뒤인 1595년(선조 28) 금오산성과 천생산성(天生山城)을 수축하여 대진(大鎭)을 만들어야 할 것을 청하였고, 11월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비변사에서 “산성에 들어가 지키게 하되 금오·천생·부산(富山)·악견(岳堅)·공산(公山)·용기산성(龍起山城)을 먼저 지킬 것이고, 화왕산성(火旺山城)을 급히 보수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선조는 도체찰사 이원익과 각 도 감사(監司)에게 이 뜻을 알리고 산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일선지(一善志)』 금오산성조에 보면 단기간에 산성을 개수하는 데 9개 주현(州縣)의 민과 군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7월 왜군이 재침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으나, 1595년(선조 28)과 1596년(선조 29) 두 해에 걸쳐 각 산성을 수축하여 방책(防柵)을 튼튼히 하고 병력을 강화하여 왜군도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7년 동안 후반 4년 동안 금오산성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 후 41년 뒤인 1639년(인조 17)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실시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1868년(고종 5)에 새로 고쳐 쌓았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산33

#금오산성


금오산 올레길

9년간 조성공사를 통행 2016년에 준공된 총길이 2.43Km의 올레길, 제당산책로, 부잔교, 아치교, 데크로드, 콘크리트구간, 흙길산책로 등 다양한 구간이 이어져 걷는재미와 금오지 와 금오산의 풍경을 즐기면서 걸을수 있어, 시민과 광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저수지

#금오산올레길


약사암

금오산 약사봉아래 암자로 구미시내가 한눈에 조망된다 『일선지(一善志)』와 『범우고(梵宇攷)』 등 조선시대 사원 정리 기록에 의하면 금오산 정상 암석간에 약사암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암자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암벽에는 신라시대의 마애보살입상이 있고, 법당 내에는 석조여래좌상 1구가 있는데 나말여초 때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에 작성된 우상학(禹象學)의 「약사암중수기」에는 법당 내의 석조여래좌상은 지리산에 있었던 석불 3구 가운데 하나가 약사암에 봉안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석조불을 감안하면 약사암의 유래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조선시대에도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5년 우상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사찰 내에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 등이 있다.

위치 : 구미시 남통동 산33

#약사암


박정희대통령 생가

조국 근대화와 새마을운동의 창시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나서 자란 집이며 1900년경 건립한 것으로추정된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신 박정희대통령 일대기를 실사 촬영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시아 최초 국내유일의 하이퍼 돔 영상관(면적227㎡, 최대80명 관람)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위치 : 구미시 박정희로 107

#박정희대통령생가


구미보

구미보는 장수와 복의 상징인 거북이, 수호의 상징인 용을 형상화한 시설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낙동강에 거북이형상의 중앙 권양대에서 360도 전망이 가능하며, 가족 또는 연인들을 위한 수변공원 및 자전거도로 등과 같은 휴식과 경관을 즐길 수 있는 편의시설과 보, 유지관리교 및 낙동강 통합관리센터 등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healthy,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