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축일:1월20일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수성구 2014. 1. 19. 01:17

제1독서
<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0(49),8-9.16ㄴㄷ-17.21과 23(◎ 23ㄴ)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나는 네 집의 수소도, 네 우리의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
○ 어찌하여 내 계명을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너의 입에 담느냐? 너는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뒷전으로 팽개치지 않느냐? ◎
○ 네가 이런 짓들 저질러도 잠자코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 아는구나. 나는 너를 벌하리라. 너의 행실 네 눈앞에 펼쳐 놓으리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는 나를 공경하리라.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봉헌할 예물을 마련해 주시고, 이 예물을 저희 정성으로 받아 주시니, 자비를 베푸시어, 이 제사를 저희 공로로 여기시고, 더 많은 상급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12),6 참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시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몇 년 전에 한 가톨릭 성서학자가 쓴 『예수님은 세상에 어떤 새로움을 가져오셨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목의 질문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언제부터인지 제가 무의식중에 종종 교회를 번잡함을 피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방공호’, 또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온건한 중재자인 것처럼 여기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깊이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셨고, 이로써 이 세상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 이를 확신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신앙에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생동감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개신교 목사로 나치 독일에 반대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현대 가톨릭 신학에도 많은 영감을 준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를 세상에 선사하시려 오셨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여기서 ‘종교’라는 말로써 비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관습과 선입관에 매달리며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어엿한 종교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 반면 ‘새로운 삶의 형태’는 바로 복음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가치들을 선택하며 사는 모습을 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새 포도주가 헌 부대를 터뜨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복음과 관습은 때로는 날카롭게 충돌할 수 있고, 이는 각 개인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당장은 피하고 싶은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새로운 삶의 길을 두려움 없이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참된 자세입니다.
.축일:1월20일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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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Sebastian - SODOMA, Il

1525. Oil on canvas, 206 x 154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축일:1월20일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St. SEBASTIAN

St. Sebastianus

San Sebastiano Martire

at Narbonne, Gaul-Martyred c.288 at Rome

Canonized: Pre-Congregation

 

 

골 지방의 나르본느 태생인 성 세바스챤은 283년경에 로마에서 로마 군인이 되었고,

마르첼리아노와 마르쿠스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던 열렬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니코스트라투스가 있었고,

그의 아내 조에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조에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클라우디우스,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시누스와 그의 아들 띠부르시우스등이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시아노로 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가 크리스챤인줄 몰랐다고 한다.

 

세비스챤이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안의 크리스챤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까스뚤로의 미망인이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세바스챤은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크리스챤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의 명으로 즉시 사형에 처하였다.

그는 군인, 운동 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로마제국 3백년 박해시대의 절정을 이루었던 때에 순교한 성인은,

283년 경에 로마군인이 되어 순교자들을 돕고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했다.

그가 신자임이 드러나자 황제는 죽을 때가지 화살을 쏘도록 명령하였고

 그의 몸은 수십개의 화살로 꿰뚫려 죽은 사람처럼 버려졌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소생한 성인은

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한 잔인한 행동을 비난했고 결국 사형선고가 집행되어

몽둥이에 맞아 순교하는 영광을 받았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Madonna with Child, St Sebastian and St Catherine of Alexandria-NEROCCIO DE’ LANDI

1485-90. Tempera on wood, 73 x 50 cm. Christian Museum, Esztergom

 

로마의 순교자인 세바스티아노에 대해서는 성 암브로시오 시대부터 밀라노에서 공경되었고,

아마도 오늘날의 성 세바스티아노 성전 가까이 있을 것 같은 아피안 가도에 묻혔다는 것 밖에는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이 없다.

 

그에 대한 신심은 아주 빠르게 파급되어 이미 350년대의 여러 순교록에서 언급되고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의 전설은 예술 면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많은 성화가 그려졌다.

오늘날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이 성인의 이야기는,

세바스티아노가 일찍이 로마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그 위치에서 만이 의심을 받지 않고

순교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발각되어 디오클레시아노 황제는 그를 심문한 후 무어인 사수에게 넘겨

그가 죽을 때까지 화살을 쏘도록 명했다.

그의 몸은 수십 개의 화살로 꿰뚫렸고 길거리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를 매장하러 온 사람들이 그를 묻으려고 만졌을 때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바스티아노는 도망가기를 거절했다.

 

어느 날 그는 황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지키고 있다가 황제에게 다가가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한 황제의 잔인한 행동을 비난했다.

이번에는 사형 선고가 집행되어 그는 결국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The Madonna between St. John the Baptist and St. Sebastian-PERUGINO, Pietro

1493, Oil on panel, 178 x 164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초기 로마에서 순교했다.

그의 무덤은 비아 아피아에 있는 카타쿰바에 자리잡고 있다.

신자들은 아주 일찍부터 그 무덤에서 성인을 공경해 왔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시편 118편 주해에서

(Cap. 20,43-45.48: CSEL 62,466-468)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한 증거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박해가 많으면 그만큼 우리 자신을 증명해 줄 계기도 많아집니다.

월계관이 많은 데에는 그만큼의 시련도 있습니다.

많은 박해자가 있는 것은 당신에게 유익합니다. 박해가 많으면 더 쉽게 월계관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념제를 맞이하는 순교자 세바스띠아노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는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박해자가 이미 떠나가 버려서인지 또는 거기에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인지 또는 덜 포악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바스띠아노는 거기에 아무 투쟁이 없거나 또는 박해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앙 때문에 박해가 격렬히 일어나고 있던 로마로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순교하여 월계관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나그네로 왔던 이 도시에서 영원한 불사 불멸이 참된 집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의 박해자만 있었다면 아마도 이 순교자는 순교의 월계관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있습니다. 즉, 밖으로 나타나는 박해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박해자들도 있습니다. 또 이들의 수효는 훨씬 더 큽니다.

 

박해자인 한 왕이 여러 가지 박해령을 내려 도시나 지방마다 많은 박해자들을 파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귀도 많은 부하들을 보내어 그들이 외적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영혼 안에서도 박해를 수행하도록 합니다.

이런 박해에 대해 바울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 친히 박해의 시련을 당하셨다면 누가 예외일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순교자가 되고 또 주예수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순교와 그리스도께 대한 이런 충실한 증거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가톨릭홈에서)

 

*성 암브로시오 주교 축일:12월7일.게시판1509번.

 

 

Martyrdom of St Sebastian-GOZZOLI, Benozzo

1465. Tempera on panel, 525 x 378 cm. Collegiate Church, San Gimignano

 

로마 제국의 3백년 박해시대에 가장 잔인하고 가혹하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학대한 것은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시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과감하게 신앙을 선언하며 깨끗이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이 상당한 수에 달했는데, 성 세바스티아노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인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 인으로서 프랑스의 나르본 시(市)에서 태어나 젊어서 세례를 받았다.

장성한 후 그는 학대를 받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라도 편의를 주려는 생각에서

일부러 군대에 입대해 잠시 로마 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용감성이 뛰어나고 가끔 혁혁한 공훈을 세웠기 때문에,

나중에는 황제의 마음에 들게 되어 명예의 직분인 근위병(近衛兵)의 한 사람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점차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어 이를 잘 이용하면 어떠한 출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지상의 영화는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과

하느님께 신심을 가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가지 않았다.

 

여가가 있는 대로 박해로 신음하는 동료들을 방문해 힘이 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원조하고, 그들과 의논 상대자가 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근위병이라 법정에나 감옥에나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기때문에

동료들을 보살펴 주기에는 지극히 좋았다.

체포된 신자들은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특히 그가 가끔 성합 속에 감추어 가지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나누어 준

예수의 성체는 얼마나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

순교하는 데 용기를 북돋아 주었는지 모른다.

또 그가 카타콤바의 집회 예식에 참석했을 때의 그의 태도는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박해는 날로 치열해졌다.

세바스티아노가 동료 신자들을 잘 보호해 주는 것도 결국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씩 신변의 위험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힘을 쓰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도왔다.

 

 

마침내 세바스티아노가 황제의 명을 거슬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황제는 이것을 듣고 격북해 즉시 그를 불러

"다년 간의 총애를 나에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금하는 교를 믿는다는 것은

동물보다도 못한 배은 망덕하는 불충이다"하고 몹시 욕을 퍼부은 다음

빨리 그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라고 명령했다.

 

세바스티아노는 그때 주 예수 그리스도나 거룩한 신앙을 거절함이 없이

다만 자신은 결코 불충의 신하가 아니라는 것과,국가에 배반하는 자가 아니란 것을 조용히 변명했지만,

그것으로 황제는 불노를 풀지 않고 결국 아프리카의 누비아 사람에게 명령해 그를 활로 쏘아 죽이라고 했다.

 

미리 각오를 하고 있던 세바스티아노는 순교야말로 원하고 바라던 바라 아주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 여유있는 태도에 사형을 명형한 황제까지도

"훌륭한 용사다.죽이기에는 애석한 군인이다"하고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처형 준비가 된 후 세바스티아노는 누비아 인의 비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에 생명을 잃었다.

 

병졸들은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잘 살피지도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중에 이레네라는 독실한 여교우가 그의 유해를 묻으려고 가서 보니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대라

그녀는 정성껏 그를 간호했고 그 결과 그는 소생해 신자들의 즐거움이 되었다.

 

 

St Sebastian Tended by St Irene-BASSETTI, Marcantonio

Oil on canvas, 89 x 100 cm. Musee des Beaux-Arts, Marseille

 

그는 회복되었으나, 순교의 영광을 얻지 못한 것을 매우 섭섭히 여겼다.

그리고 황제에게 다시 한번 더 설명하면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고서, 어떤 날 황제가

태양신상(太陽神像)의 전면의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 갑자기 나타나서 신앙의 이유로

무죄한 백성을 학대하고 죽인 비리(非理)를 조리있게 설명했다.

황제는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세바스티아노를 눈앞에서 보고, 한때는 유령이 아닌가 하고 대단히 놀랐으나,

그 다음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시 바삐 저 놈을 원형극장(圓形劇場)에 끌고 가서 몽둥이로 때려 죽여라!"하고

경비 선 병정들에게 호령해 그대로 형벌은 집행되었다.

이와 같이 세바스티아노는 이번에는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순교의 영광을 획득했다.

 

때는 288년이었고 방수로(放水路)에 버린 그 유해는 신자들에게 발견되어 카타콤바에 정중히 매장되었다.

그 후 로마 제국에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지자 그의 무덤 위에 한 성전이 건립되었다.

이것이 지금도 로마 시에 남아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의 시초이다.

 

그의 영광스러운 순교는 세계 각국에 전파되어, 그 기념으로 이루어진 성전이나 그림이 적지 않다.

그가 나무에 결박되어 화살을 맞고 있는 그림 등은 아마 그리스도교 신자이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St Sebastian Intercessor-GOZZOLI, Benozzo

1464-65. Fresco, 527 x 248 cm.Nave of Sant’Agostino, San Gimignano

 

 

 

 

 

축일 : 1월 20일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Pope FABIAN

San Fabiano Papa e martire

St. Fabianus, Pap. M

Papal Ascension 236

artyred c.250; his relics are long gone,

but the stone that covered his grave is still in the catacombs of Saint Callistus, Rome, Italy

 

 

로마의 평신도이던 파비아노는 236년 1월 1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선거를 실시하는 동안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 앉았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없다.

다만 이단 문제로 인하여 아프리카의 람베사의 프리바투스 주교를 단죄하였고,

가다꼼바에서 행한 놀라운 복원사업 등이 돋보이며, 데치안의 크리스챤 박해 초기에 순교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파비아노는 로마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할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자기 농장에서 로마 시내로 돌아오던 평신도였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오는 이 때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파비아노의 머리위에 앉았다고 말했다.

이 표시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만장일치로 파비아노를 선출하게 되었다.

그는 14 년 동안 교회를 이끌어갔고 250 년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영광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성 치프리아노는 그가 ’비할 데 없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영광스러운 죽음은 그가 살아온 성덕과 순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자기 후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성 갈리스도의 지하공동체(가다콤바)에서는 파비아노의 무덤을 덮었던 돌을 아직도 볼 수 있는데

네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 이 돌에는 ’파비아노 주교 순교자’라고 그리스 말로 씌어 있다.

.....

 

데치오 황제가 일으킨 박해가 너무나 혹독했기 때문에 교우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로마인들이 로마를 많이 떠났기 때문에, 은수(隱修) 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단 문제로 인해 아프리카의 주교 람베시스의 프리바투스에 대한 단죄를 인정하고

전임자 폰시아노 교황이 단죄한 오리게네스가 화해의 표시로 보낸 서한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사르디니아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폰시아노 교황과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성인의 시신을 로마로 모셔 성대하게 예를 갖춘 후 갈리스토 묘지에 장례 지냈다.

 

성 치프리아노가 증언하는 바대로,

데치오 황제가 박해를 시작하던 무렵인 250년 순교의 월계관을 얻어 갈리스토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에 이장되었다

 

 

 

 

236년 로마 교회의 주교로 뽑히고, 성 치쁘리아노가 증언하는 바대로,

데치우스 황제가 박해를 시작하던 무렵인 250년 순교의 월계관을 얻어 갈리스도 묘지에 묻혔다.

 

 

파비아노 교황의 순교에 관한 성 치쁘리아노 주교와 로마 교회의 편지에서

(Ep. 9,1 et 8,2-3: CSEL 3,488-489. 487-488)

 

파비아노는 우리에게 신앙과 덕행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성 치쁘리아노는 교황 파비아노께서 죽음을 당했다는 확실한 전갈을 받았을 때

로마에 있는 사제들과 부제들에게 다음의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나의 동료 주교이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그분이 죽었다는 불확실한 소문을 듣고

그 사실을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차부제 글레멘스 편으로 내게 보내 준 편지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그분의 영광스런 죽음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끝까지 충실하게 교회 직무를 수행한 그분이 그렇게도 영예로운 마지막을 맞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장엄하고도 찬란한 증거로써 그분을 공경하며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분께 축하의 말을 보내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쓴 이 편지를 통해서 나는 여러분의 지도자에 대한 영광스러운 기념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영예가 되고 또 우리에게도 얼마나 위대한 신앙과 덕행의 모범이 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실상 지도자의 몰락이 그의 수하 사람들을 몰락의 위험으로 이끌수 있기에 그것이 큰 해가 될 수 있지만,

한편 주교가 자기 형제들에게 굳센 신앙의 모범을 줄 때 그것은 가치있고 유익한 것이 됩니다."

 

이 편지를 받기 전 로마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신앙을 지켰다는 다음의 증언서를

이미 카르타고 교회에 보냈다고 한다.

"이곳 교회는 대체로 견고히 신앙을 간직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들의 높은 지위나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공포심에 사로잡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이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는 그분에게서 용서를 받도록,

또 우리가 그들을 버린다면 더 나쁜 상태가 될까 염려되어 그들이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우리처럼 하여 떨어져 나간 이들이 여러분의 권고에 힘입어 회개하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다시 체포되게 된다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럼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기워 갚게끔 하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또 다른 것들도 말해야 하겠습니다.

이시련에 넘어진 이들 가운데 그 병에서 회복되기 시작하여

잘못된 것에 대해 보상하고 교회와의 일치로 되돌아오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그런 이들을 마땅히 도와주어야 합니다.

과부들이나 또는 감옥에 있거나 자기 집에서 쫓겨나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낼수 없는

억압받는 이들도 도와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병에 걸린 예비 신자들도 그들이 기대하는 도움을 받지 못해 실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슬에 매인 형제들과 사제들과 온 교회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 대해 언제나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기억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바입니다."

(가톨릭홈에서)

 

*성 치프리아노 주교 축일:9월16일.게시판1366번.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하느님의 손길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어느 날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농부였던 파비아노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던 시기에 우연히 도시로 가게 되었다.

 그가 도시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파비아노의 머리에 앉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새 교황의 징표라고 믿었다.

 

그는 정식으로 교황으로 선출된 후 데치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하기까지 15년 동안 교황으로 재위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그때 단순히 내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글쎄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내 머리 위에 앉는 거야. 그리고 난 교황이 되었지.”

 

성 파비아노처럼 특별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감싸는 따뜻한 느낌이나 마음속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기쁨과 같은

작은 체험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특별히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 가까이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최근에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오늘 나의 삶 안에서 하느님 사랑의 손길을 찾아보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