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전삼용 신부님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

수성구 2018. 1. 1. 02:59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 전삼용♡신부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복음: 루카 2,16-21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 2’에 ‘송이의 노란 우산’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사연입니다.

송이 엄마는 시장 좌판에 앉아 나물을 팔았다. 일곱살 송이는 아침밥을 먹고 늘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갔다. 어른들만 있는 시장에서 송이의 유일한 친구는 까만 때로 얼룩진 인형뿐이었다. 머리카락까지 듬성듬성 빠져버린 인형은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 저 할아버지 너무 무서워. 할아버지 옆에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나."

송이는 멀지 않은 곳에 힘없이 서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엄마 뒤로 숨어버렸다.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채소장소를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할아버지는 슬픔으로 온종일 술만 마시고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잤다. 할머니 병원비로 할아버지는 산동네 집까지 모두 잃고 말았다. 시장 사람들은 말했다. 할아버지가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잊지 못해서라고...

술에 취한 할아버지는 대낮에도 방앗간 옆 땅바닥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시장사람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예전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할아버지에게 막말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장입구에는 가게를 지으려고 파헤쳐 놓은 길이 있었다.

어느 날 송이는 그 앞으로 뛰어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송이가 넘어지는 순간 들고 있던 인형이 깊이 파헤쳐진 웅덩이로 떨어져 버렸다. 인형이 떨어진 곳엔 썩은 물이 고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더러운 물에 빠져서 다리만 간신히 내민 인형을 바라보던 송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송이는 훌쩍거리며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가 손가락으로 인형을 가리켰다. 떠름한 낯빛으로 지나칠 뿐, 더러운 물로 들어가 인형을 꺼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닭집 아저씨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왜 울어, 송이야."
"아저씨....."
송이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저건 안 돼, 송이야. 더러운 물 만지면 병 걸려. 엄마한테 인형 사주라고 아저씨가 말해줄게."
송이는 억지로 팔을 끄는 닭집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야...."
뒤를 돌아보았을 때, 송이의 눈은 금세 휘둥그레졌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몸을 비틀거리며 인형 있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신발을 신은 채 냄새는 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인형을 주웠다. 할아버지는 인형에 묻어 있는 더러운 물을 때 절은 옷소매로 조심조심 닦아주었다.

"다치지는 않았냐?"
"네.."
송이의 서먹한 대답에도 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도깨비 뿔처럼 마구 헝클어진 하얀 머리가 송이는 예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저녁부터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송이는 노란 우산을 받쳐 들고 어둑해진 시장 길을 바쁘게 걸었다. 비를 맞고 누워 있을 할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방앗간 뒤쪽 처마 밑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는 비바람으로 얼굴까지 온통 젖어 있었다. 송이는 자기가 쓰고 있던 노란 우산으로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에 얹은 채, 멀리 엄마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데 송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바람에 날아가 버린 노란 우산이 할아버지 옆에 벌렁 누워서 동그란 얼굴을 땅에 비비고 있었다. 송이는 서둘러 할아버지에게로 다시 달려갔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노란 우산이 날아갈까 봐, 송이는 할아버지 옆을 떠날 수 없었다. 노란 우산 밖으로 나와 있는 할아버지의 새까만 팔을 노란 우산 안으로 끌어당기며 송이는 말했다.

"할아버지, 비와요. 여기서 자면 안 되는데.."

송이는 여귀꽃처럼 가는 팔로 비에 젖은 할아버지 다리를 처마 밑으로 힘껏 당겼다. 할아버지의 때 묻은 손을 송이는 꼭 잡고 있었다. 때 절은 손이지만 더러운 물에 빠진 송이 인형을 꺼내준 고마운 손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할아버지의 눈가로 따스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젖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던 송이 눈가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멀리 엄마가 있는 곳에서 조그만 불빛이 붉은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에선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송이는 엄마 옆에서 때 절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때 닭집 아저씨가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송이에게로 다가왔다.

"송이야, 선물이다."
"아, 예뻐라..."
예쁜 인형을 받아 든 송이 눈가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송이야, 저기 봐,. 이 인형, 할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사주신거야."

닭집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나리꽃처럼 활짝 피어있는 노란 우산을 흔들며 송이를 향해 활짝 웃었다. 할아버지가 끌고 있는 낡은 손수레에는 펼쳐진 종이 상자들이 가득히 쌓여있었다. 그날 이후로 시장 사람들은 못 쓰는 종이 상자를 하나하나 모아 할아버지에게 주었다. 할아버지도 더 이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 않았고, 길 위에 쓰러져 있지도 않았다.

더럽고 냄새난다며 모두 할아버지를 멀리 할 때, 어린 송이는 말없이 다가가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외로움과 절망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할아버지는 송이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가장 더럽고 역겨운 곳까지 내려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아니 ‘가장 멸시받는 모습으로 나무위에 달려 높이 올려지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의 모욕과 멸시를 받는 그런 치욕적인 아들을 두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위의 이야기에서 송이의 더러운 인형을 자신을 더럽히면서까지 구덩이에서 꺼내주고 싶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 때 그 사랑을 이해하는 한 ‘보잘 것 없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눈에는 가난하고 가녀리고 힘도 없는 작은 시골 처녀에 불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그 사랑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상관없으니 하느님의 뜻만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시도록 ‘아멘!’하셨습니다. 하늘도 인간 가운데 그런 사랑이 있음에 탄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역겹기만 하던 인간이 예전처럼 거북스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나마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의 뜻을 위하여 가장 더러운 곳까지 함께 가실 줄 아는 사랑을 보여준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어머니를 위해서도 천상영광의 관을 씌워주시고 그 어머니의 사랑을 닮은 이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십니다. 마치 송이가 할아버지가 걱정돼 노란 우산을 들고 와 할아버지를 덮어드린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온 인간을 다시 사랑하시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그 분을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새해 첫 날 이 신비를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같은 동료선수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초기에 박찬호 선수는 자신과 같은 소속 식구들에게도 왕따였습니다. 그리고 한 선수는 자신이 씹던 껌을 뱉어서 박찬호 선수에게 던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박찬호는 참을 수 없어서 그 선수와 맞붙어 싸웠는데 말을 할 줄 모르는 자신만 징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힘들면 돌아와라, 보고 싶다는 등의 어머니면 다 하시는 그런 질문들을 쏟아내셨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비록 멀리 있지만 어머니의 그 사랑을 다시 느끼며, 이런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통역 없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How are you?’라고 인사하였습니다. 물론 다른 말은 모르기 때문에 그 말만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은 다 버리고 치즈와 미국 음식만을 먹었습니다. 느끼해서 토할 정도가 되었지만 참아냈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싫어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 몸에서 나는 마늘 냄새였다는 것을. 그들은 박찬호 선수 몸에서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치즈 냄새가 나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동료들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었고 좋은 성적을 거둬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이철환 작가는 ‘자식은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연탄길 2, 177)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도 혼자서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 머물러 계셨던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당신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루카 2,52)

그분이 몸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자랐다면 그분이 자라도록 누가 눈물을 흘리셨겠습니까? 당신 영혼이 예리한 칼에 찔려 눈물을 흘리신 분은 성모님이 아니고 누구시겠습니까? 또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이 아니면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겠습니까? 그리고 당신 구원의 가시밭길을 가시며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실 때마다 당신과 항상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려주시는 어머니 때문에라도 힘을 얻지 않으셨겠습니까? 낳으신 것뿐만 아니라 기르시고 함께 해 주신 것에서도 성모님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날입니다. 그리고 그 첫 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그분을 기억합니다. 하느님을 낳으시고 기르셨듯이 당신의 자녀가 되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시어 우리도 보호해 주시고 길러주시기를 먼저 배워야 함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올 한 해도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몸도 지혜도 날로 자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도 작은 예수님으로 키워주시기를 기도합시다.(2014)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