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전삼용 신부님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수성구 2017. 12. 20. 04:04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전삼용♡신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루카 1,26-38

빗을 만드는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무려 100명이나 지원을 했습니다. 면접관이 100명을 모아놓고 빗을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스님들에게 이 나무빗을 팔아보세요. 시간은 열흘 드리겠습니다. 가장 많이 판 분을 영업부장에 임명하겠습니다. 한 개도 팔지 못하신 분은 회사로 돌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머리카락이라곤 한 가닥도 없으신 스님들에게 빗을 팔라니 나 원 참!’

모두들 이렇게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돌렸고, 결국 열흘 뒤에 단 세 사람만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바위에 앉아 맨머리를 긁고 있는 스님에게 다가가 머리 긁는데 쓰는 용도로 한 개를 팔았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절을 찾아오는 분들의 머리카락이 산바람에 많이 엉켰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빗을 문밖에 달아 놓으면 참배객들이 머리를 단정히 하고 들어올 것이라며 주지스님을 설득하여 10개를 팔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절에 오는 분들에게 나무빗에 적선소(積善梳: 선을 쌓는 빗)라고 글자를 새겨서 답례로 전하면 굉장히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크게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1천개를 주문하셨습니다.”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두 번 권유하는 사람은 25%였습니다. 세 번 권유하는 세일즈맨은 15%였습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방학을 맞아 주일학교 아이들 가정방문을 다녔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성당을 올라갈 때 어떤 교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치면 더 지쳐요. 씩씩하게 걷는 게 덜 힘들어요.”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억지로 끌려 다니면 그것만큼 힘든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성모님께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고 하여, 성모님의 믿음이 부족해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의심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외쳤듯이, 성모님이 행복하신 이유는 믿을 줄 아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이미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면 확실하게 따르고 싶기에,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당신 안에 하느님의 아드님이 잉태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사진을 찍으라고 허락을 하고나서는 1000장이라도 찍으라고 기자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인입니다. 결정했다면 자신의 결정에 적극적인 자세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대인인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부제서품을 받을 때까지도 자신이 사제가 될 재목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는 신학생들을 보았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왔다면 사제가 되기로 결정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노력하여 훌륭한 사제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인데, 시험을 보고 신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성소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것은 이런 중요한 결정도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고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아들 이사악을 재물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늦은 나이에 기적적으로 얻게 된 유일한 아들을 재물로 바치는 일은 세상에서 정신병자로 취급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이 ‘아침 일찍’이란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적극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기로 했다면 미적대지 않는 것입니다. 억지로 끌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도 끝났고 결과도 나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더라도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자세는 옳지 않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면 더 지치는 법입니다.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젠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었더라도 상대를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을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성모님처럼 나에게 매 순간 다가오는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시다. 만약 결혼해서도 이 결혼을 잘 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를 따지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이 결혼을 얼마나 잘 이끌어 갈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더 올바른 자세입니다. 이번 대선의 결과도 잘 소화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전삼용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