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하느님의 자비를 믿자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수성구 2013. 11. 3. 06:19

하느님의 자비를 믿자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 하느님의 자비를 믿자 ^^*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겸손의 기도를 한번쯤 드려보셨나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됐나요? ^^*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도 형제 자매님이 더 행복해지셨을 겁니다. 형제 자매님, 벌써 11월이 시작되었고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는 위령성월을 맞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만난 또 우리가 만나게 될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전례의 독서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의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먼저 제1독서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주님께는 온 세상이 ‘천칭의 조그만 추’처럼 보잘것없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허망한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당신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먼저 죄인에 대한 자비로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시기보다 자비를 베푸시면서 죄인을 조금씩 고쳐주십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그 사람이 죄를 깨닫고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고자 함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이었습니다. 당시의 세관장은 정해진 금액을 로마황제에게 지불하고 로마로부터 일정한 구역의 세금 징수권을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런 세관장은 자신이 지불한 돈보다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로마를 등에 업고 동족들에게 온갖 악랄한 방법을 다 사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고 그들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자신의 이름처럼(자캐오는 ‘하느님이 기억하신다’라는 뜻) 하느님이 자기를 찾아 주시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께서 그가 사는 예리코에 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열망에서 주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캐오를 쳐다보셨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모두가 죄인으로 여기고 상대해 주지 않는 자캐오에게 예수님은 큰 자비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내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인 자캐오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인색하고 자기만 알던 착취자가 돈과 자신을 넘어섭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캐오는 사실 그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동족들에게 욕을 얻어먹었고 사람대접도 받지 못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어주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네 곱절로 갚아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는 참으로 회개를 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모두 주님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오늘 복음의 군중들과 같은 것이라면 즉,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그냥 지켜보는 구경꾼의 자세로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캐오처럼 주님을 우리 집에, 곧 내 마음 안에 그리고 우리 가정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서도 자캐오에게서와 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자캐오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자캐오는 무엇보다도,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추구해오던 물질적인 부를 아무 것도 아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가치관의 전도가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사랑을 첫 자리에 두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욕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가 이제 사랑의 눈으로 그것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내면 깊숙이 주님을 모셔 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깊이 잠길 때, 자캐오와 같은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변화를 바라는 이유는, 제 2독서의 바오로사도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분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 역시 그분께로부터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우리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의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노력할 때, 우리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도 영광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하양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