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선교의 첫걸음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강론이 바뀌어서 다시 보내드립니다

수성구 2013. 10. 20. 12:20

선교의 첫걸음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강론이 바뀌어서 다시 보내드립니다.


- *♥* 선교의 첫걸음 ^^*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 많았나요? 감사하면서 더 큰 사랑을 체험하셨나요?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되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감사기도를 드려보세요. ^^* 형제 자매님, 이제 결실의 계절 가을도 깊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뿌린 씨가 많은 결실을 맺어주니까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고 그래서 행복한 계절입니다. 삶에 있어서도 많은 결실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형제 자매님, 어제는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동기 신부 모친상이 있어서 어제 늦게 가톨릭 병원에서 동기 신부들과 연도랑 이사를 드리고 늦게 돌아왔습니다. 급하게 작업을 해서 강론 메일을 올렸는데... 아침에 보니까 다른 주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ㅠㅠ 형제 자매님,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그런데 전교주일이 되면 많은 분들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아직 전교를 할 용기가 없는데..." 하고 걱정부터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례 중에 함께 불렀던 화답송의 한 소절이 전교주일을 지내는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노래 불러라.” 이렇게 온 세상이 기쁨에 겨워 하느님 앞에서 찬미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전교주일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언젠가 세상 사람들이 사는 길을 배우러 주님께 나아오고, 그 결과로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기에 더 이상 민족 사이에 전쟁이 없고 모두가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그런 시절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참된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생을 사셨습니다. 즉, 세상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실패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사신 결과가 십자가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실패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하시던 일을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누구나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선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겠나?” 하고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할 수가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교회에서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한 두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1927년에 선포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과 1929년에 선포된 소화 데레사 성녀입니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은 인도에서 3년 말레이시아에서 약 6개월 그리고 일본에서 2년3개월 동안 선교를 하시고 중국 선교를 준비하다가 열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6년 정도의 짧은 선교활동에서 3만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마 교회 역사상 개인이 준 최다의 숫자일 것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선교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될 만합니다. 그런데 소화 데레사는 15살에 갈멜 수녀원에 입회를 해서 24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봉쇄수녀원을 떠나보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되었으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해야 하는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듣는 것만으로는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보아야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말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항상 구체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겪는 고통과 자신의 병으로 인한 고통들을 죄인들의 회개와 선교지역의 사제들을 위해서 바친다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과 기도가 그녀를 선교의 수호성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날 사람들은 더욱 사랑에 굶주려있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에 더 쉽게 감동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형제 자매님, 저는 이태리 포콜라레 사제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포콜라레 이상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로삐아노라는 작은 마을에는 주말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이태리 각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보통 1박 2일을 머물고 떠나는데, 그들이 떠나면서 남겨놓은 소감들을 보면, "하느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 "천국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이제 다시 교회를 찾아갈 것이다." 등등의 이런 비슷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사는 것만으로 훌륭한 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킬까요? 오로지 사랑의 삶뿐입니다. 그들은 사랑을 법으로 사는 사람들 곧 복음을 법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복음을 구체적으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남에게 전할 때 더 강해지니까요.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복음을 살 때 먼저 내가 복음화가 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형제 자매님, “내가 그 일을 잘 할 수가 있을까?” 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로써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오늘 하루도 우리를 당신 선교사업에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가족들과 이웃들을 잘 사랑하도록 노력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맡은 선교사업의 첫걸음입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하양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강론이 바뀌었다하시네요 그럼 음악도 가져 와야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