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수성구 2017. 9. 27. 05:40

2017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에즈 9,5-9

저녁 제사 때에, 나 에즈라는 5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주 나의 하느님께 6 말씀드렸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7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복음 루카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언젠가 제 사제관에 신부님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피정지도를 하러 갑곶성지에 오셨다가 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사제관을 방문하신 것이지요. 커피를 대접하려는데 어떤 커피 잔에 담아 드려야 할지가 고민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이시기에 신부님의 마음에 드는 잔에 커피를 담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커피 잔들을 보여드리면서 “어떤 잔에 커피를 담아 드릴까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잔이든 상관없어. 커피만 맛있으면 되는 것 아냐?”

사실 중요한 것은 커피의 맛이지 잔은 아닙니다. 물론 커피 잔이 멋있어야 그 맛이 더 커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분명히 중요한 것은 커피 맛 그 자체입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부수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것처럼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커피 잔보다는 커피 자체가 더 중요한 것처럼, 우리 삶 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최고의 가치인 양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노튼은 노숙자들에게 5달러에서 20달러를 주면서 이러한 조건을 걸었습니다. 받은 돈을 그날 모두 써야 하는데, 절반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출하라는 조건을 말했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은 노숙자들은 받은 돈으로 약속대로 자신을 위해 절반을 그리고 남을 위해서 절반을 사용했습니다. 그 뒤에 이들에게 어떤 경우에 더 행복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해 돈을 지출 할 때 행복감이 더 높았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거액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행복감은 딱 2주밖에 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정말로 행복한 내 자신을 위해 중요한 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 점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강도나 들짐승들을 막아설 수 있는 지팡이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빵도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여벌옷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다는 것,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지요. 그렇게 제자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다니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것들도 주님을 향한 열정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면서 불평불만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를 주님의 뜻에 맞춰 사용해보십시오. 분명히 새로운 눈이 보일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하느님을 혼신을 다해 사랑하십시오(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바보들의 결탁

내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내 자신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패배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존 케네디 툴(John Kennedy Toole, 1937~1969)은 ‘바보들의 결탁’이라는 소설을 쓴 뒤에 출판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모든 출판사의 퇴짜였습니다. 이러한 퇴짜에 충격을 받은 존 케네디 툴은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었고, 우리 나이로 33살의 나이에 텅 빈 거리의 자동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이 원고를 발견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출판을 부탁했는데, 당시 미국 남부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워커 퍼시의 도움으로 1980년에 이 소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대중과 평단의 큰 사랑을 받았고, 출판한 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존 케네드 툴이 쓴 원고와 다른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조금의 수정도 없이 그냥 그대로 출판한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버리는 일도 없었겠지요.

어떤 것의 가치 유무를 외부적인 요소들이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보다는 주님의 기준을 따른다면 분명히 외부적인 요소들에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느 소설가의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