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수성구 2017. 6. 6. 05:42

2017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토빗 2,9ㄴ-14

오순절 밤 나 토빗은 죽은 이들을 묻어 준 다음, 9 내 집 마당에 들어가 담 옆에서 잠을 잤는데, 무더워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10 내 머리 위 담에 참새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뜨거운 참새 똥이 내 두 눈에 떨어지더니 하얀 막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그들이 약을 바르면 바를수록 그 하얀 막 때문에 눈이 더 멀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아주 멀어 버렸다. 나는 네 해 동안 시력을 잃은 채 지냈다. 내 친척들이 모두 나 때문에 슬퍼하고, 아키카르는 엘리마이스로 갈 때까지 나를 두 해 동안 돌보아 주었다.
11 그때에 내 아내 안나는 여자들이 하는 일에 품을 팔았다. 12 아내가 물건을 만들어 주인들에게 보내면 주인들이 품삯을 주곤 하였다.
디스트로스 달 초이렛날에 아내는 자기가 짜던 옷감을 잘라서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품삯을 다 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었다.
13 내가 있는 곳으로 아내가 들어올 때에 그 새끼 염소가 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불러 말하였다. “그 새끼 염소는 어디서 난 거요? 혹시 훔친 것 아니오? 주인들한테 돌려주시오. 우리에게는 훔친 것을 먹을 권리가 없소.”
14 아내가 나에게 “이것은 품삯 외에 선물로 받은 것이에요.” 하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내를 믿지 못하여 그 새끼 염소를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다시 말하면서, 그 일로 아내에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복음 마르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저는 책을 많이 봅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조금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바쁘고 힘든 일이 주어질 때에는 책을 읽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감동도 줄어듭니다. 하지만 약간의 여유를 갖고서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자주 깨닫습니다. 여유가 있다 보니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주변을 바라보면서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의미를 삶에 접목해 보기도 합니다.

세상은 바쁘게 흘러갑니다. 그러다보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사유의 발전은 여유로움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바쁨 안에 몸을 내맡기면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낼 뿐이지만, 여유로움 안에서 생활하면 많은 생각 속에서 그만큼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바쁨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 잠 잘 시간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럴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루에 단 5분도 여유로움을 가질 수가 없을까요? 이 여유로움을 주님과 만나는 시간인 기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기도를 해치워야 할 하나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보니 그만큼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를 맡기는 모습보다는 하느님께 내 자신을 맡기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를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주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께 황제에게 세금 내는 것이 합당한지를 묻습니다. 세금은 당연히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다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금으로 내는 데나리온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동전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우상숭배를 따르는 것으로 하느님께 대한 커다란 불충이 되는 것이어서 세금 내는 것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단순히 세금 문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우리들의 마음이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데나리온 한 닢에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기에 로마 황제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누구에게 돌려 드려야 할까요? 바로 우리를 만드시고 사용하고 계시는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즉,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우리 자신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바쁨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온전히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공자).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순국선열을 기억합시다.


함께한다는 것.

종종 사업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긴 형제지간, 부자지간에도 같이 사업하다가 싸우고 고소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업은 무조건 혼자 해야 성공할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IT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둘을 뽑으라고 하면 아마 애플의 스티븐 잡스(Steven Paul Jobs)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일 것입니다. 이 둘의 천재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천재성으로 혼자 창업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애플을 공동 창업했고,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립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천재성을 가지고도 왜 함께 했을까요? 후대의 사람들은 이 둘이 다른 사람과 함께 창업하고 협동하지 않고 혼자서 나아갔다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팀워크, 파트너십, 집단지성을 추구하면서 함께 했기에 놀라운 업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몇 배 세상에 쏟아 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할까요? 단지 이견의 차이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래서 싸우기 싫어서? 어쩌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숨겨진 놀라움을 꺼내지 못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이로 인해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놀라운 잠재력이 세상에 나옵니다.


스티븐 잡스와 빌 게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