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수성구 2017. 6. 1. 06:33

2017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복음 요한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강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을 감고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있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고 있지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눈을 뜨게 한 뒤에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행복했던 순간에 당신은 혼자였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10명 중에 9명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혼자만의 행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해줍니다. 행복이란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때 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치 혼자만의 행복만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 혼자만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나 혼자만 이 사회에서 성공을 하고, 나 혼자만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올 뿐, 참된 행복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객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다는 부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고, 이 농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농토를 더 늘리고 싶지요?”

그러자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아니오. 농토가 늘어나면 더 일해야 하고, 그러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이 줄어들 텐데, 왜 그런 짓을 해야 합니까?”

내 개인의 욕심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농부의 생각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당신 있는 곳에 당신을 따르는 우리 역시 있게 해주십사고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을 벗어나 혼자만의 삶을 통해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고, 주님과 함께 할 때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주님의 기도처럼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 안에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도인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의 이웃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과 행동들이 나를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데일 카네기).


성 유스티노 순교자.


약속(바울로 코엘류, ‘불륜’ 중에서)

영국의 유명한 시인 바이런 경이 있다. 1871년의 어느 날, 바이런 경과 함께 한 두 명, 즉 시인이었던 퍼시 비쉬 셸리와 열여덟 살이던 그의 아내 메리가 함께 문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 존재의 조건을 묘사하는 책을 한 권씩 써서 일 년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모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퍼시 비쉬 셸리의 아내 메리를 제외한 두 명은 이 약속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내 메리가 지은 책이 무엇일까? 바로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이다.

우리는 약속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특히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주님과도 참 많은 약속을 하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 주님과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름다운 성모성월도 끝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