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

수성구 2017. 1. 29. 06:04

2017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스바 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제2독서 1코린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 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아주 어렸을 때, 빈 집을 혼자 지켜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 가셨고, 형과 누나들은 학교에 갔고,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급한 일이 있으셔서 잠깐 나갔다가 오신다고 하셨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왜 이렇게 늦게 흐르는지 모릅니다. 학교 숙제는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도 빨리 끝내지고,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영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괜히 두렵고 무서운 생각만 듭니다. 자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전설의 고향’의 무서운 장면이 떠올려지면서, 실제로 내 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두렵고 무서웠을까요? 지금의 홀로 있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 잠시 뒤에 어머니께서 오시고 형 누나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것을 믿고 있다면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았겠지요. 왜냐하면 조금만 참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러한 믿음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에 머물러 있으니까 무서움에 힘든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것이다. 30분이 지나면 무서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30분 후에 끝나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언제 끝나는 줄 몰라야 그게 진짜 고통이다.’

저의 체험을 떠올리고, 또 이 글을 보면서 우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진짜 고통일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언제 끝나는 줄 모르기 때문에 진짜 고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세상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고통이라는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시 지나갈 그래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곧 지나가서 잊힐 한 순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분명히 지금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을 이겨낼 희망의 길을 찾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행복선언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통과 힘듦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 안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만족의 길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을 간직할 때,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실한 행동은 자기보다 남을 더 이롭게 한다(아함경).


오늘은 해외원조 주일입니다.


젊은 오빠(이응석,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중에서)

나는 인생 후반부 행복한 삶의 요체를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걷기요 둘째는 공부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계획, 야망, 꿈은 구름 잡는 소리다. 이 세상 가장 미련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하여 건강을 해치는 자라 했다.

‘재보만고건실무용(財寶滿庫健失無用)’ 재물과 보물이 창고에 가득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걷기와 공부. 하나는 몸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 건강, 마음 건강이 함께 가야 인생 후반부가 더욱 팽팽하고 행복해진다.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열심히 걷고, 손에는 항상 공부하는 책이 들려 있으면 그 자체로 이미 '젊은 오빠' 이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까? ‘이제 뭘 공부해?’, ‘힘들어서 운동 못해.’ 등등의 생각은 분명히 우리를 젊게 만들지 못합니다. 젊게 사는 새해가 되십시오.


새해부터 축하를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