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성구 2017. 1. 26. 05:22

2017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제1독서 티모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1,1-5
1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2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4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5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루카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2004년, 갑곶성지에 부임 받아 온 해입니다. 즉, 갑곶성지의 초대신부로 성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 혼자 이곳에 와보니 막막하고 때로는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바로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넓은 성지에 나무가 없어서 너무 휑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잘 꾸며진 수목원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잘 자란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면 누구나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나무, 영산홍, 벚나무, 메타스콰이어, 무궁화, 장미, 주목나무 등 2,000그루 이상을 심었습니다.

그 뒤 저는 성지를 떠나서 본당신부, 교구 성소국장, 안식년을 거쳐서 작년 1월에 10년 만에 다시 갑곶성지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살펴보았던 것은 전에 심었던 나무들이었습니다. 2,000그루 넘게 심었으니 그래도 많은 나무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나무는 몇 그루되지 않더군요. 실망했지만 순간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정말로 멋지고 소위 잘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나무들은 거의가 없어진 것입니다. 대신 시들시들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던 볼 품 없는 나무들이 지금은 뿌리를 단단히 내려서 잘 살고 있더군요. 이 모습을 보면서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니라, 잘 자라느냐 못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를 부르셨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로서의 부르심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에 맞게 활동할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부르심을 받을 당시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능력과 재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보다는 그 부르심에 얼마나 잘 응답하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즉, 능력과 재주 등이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인구가 줄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분명히 많지만 자신의 부르심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다른 길을 향해 가기 때문에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쫓아서 주님의 곁을 떠나는 우리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의 곁에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하신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나폴레옹)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


무엇이 중요한가?

어떤 사람이 집 하나를 매입하려고 합니다. 이 집은 이제 곧 무너질 것 같은 아주 초라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집을 매입하려는 이유는 그곳의 전망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지요. 이 집 주인은 ‘수리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서 이 집을 수리하고는 집값을 높여 불렀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집을 매입하려는 사람은 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집이 위치하고 있었던 그 자리를 원했던 것이고, 따라서 매입한 뒤에는 집을 허물고 다시 새롭게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수리하고 집값을 높여 부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집을 매입하려는 사람이 원했던 것은 집터이지 집 자체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집주인처럼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삶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 자체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 안에서 인정을 받는 능력과 재주만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뜻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말이지요.

무엇을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에 먹지 않지만, 피정 중이라 먹어봅니다.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