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수성구 2017. 1. 12. 06:12

2017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히브 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복음 마르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어느 공공장소에서 한 어린 꼬마아이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었던 컵을 떨어뜨려서 컵 안에 있었던 음료수를 바닥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조심하라고 했지? 음료수를 바닥에 쏟아서 얼마나 지저분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인상을 쓰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며칠 전 어느 식당에서 제가 했던 실수가 생각났습니다. 실수로 컵을 떨어뜨려서 컵 안에 있던 물을 바닥에 쏟았거든요. 얼른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쏟은 물을 치우려고 했더니, 직원이 얼른 와서는 정리를 해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럴 수 있죠. 괜찮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만약에 앞선 아이 엄마와 같은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면 어떨까요? 아마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면서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엄마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던 아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실수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나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입장 바꿔 생각한다면 지금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의 마음 역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생겨나고 있습니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병환자는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천형’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직접 나병이라는 벌을 내리신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도 흉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세상의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절하게 청원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단죄했던 나병환자입니다. 예수님 역시 세상의 사람들처럼 외면하고 “너는 죄인이라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나병환자의 입장에 서서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보셨던 것입니다. 병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외면을 당해서 외로움 속에 홀로 버려져 있는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에게 손을 대시면서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이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랑을 주시는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생텍쥐페리).


여기는 어느 바다일까요? 제가 지금 이 근처에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해....

예전에 허리가 상당히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났는지 어떤 형제님께서 제게 전화를 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제가 운동선수들 마사지를 담당합니다. 신부님 허리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제가 마사지를 해드리면 어떨까요? 분명히 호전될 것입니다.”

당시 너무 아파서 거의 꼼짝도 못했을 때였거든요. 벌떡 일어날 수도 없었고, 양말도 혼자서 신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마사지를 부탁했습니다.

그날 저녁, 이 형제님께 마사지를 받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아픈 것입니다. 치료가 아니라 제게 큰 고통을 주기위해 오신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형제님, 그만 하죠. 너무 아픕니다.”라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께서 여기 들어오실 때 어정쩡한 모습으로 들어오셨고, 혼자서 제대로 눕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혼자서도 벌떡 일어나셨잖아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과 시련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분명히 이 고통과 시련은 아프고 견디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불평불만만 하고 화를 내야 할까요?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며나서 지금 이 순간의 힘듦을 참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마음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분명히 하느님께서 주시는 큰 선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수가 날씨와 어울려서 멋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