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11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수성구 2017. 1. 11. 05:08

2017년 1월 11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월 11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복음 마르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처음 신학교 들어갔을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식사 때가 되면 모든 신학생들이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한 테이블에 8명씩 앉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언제나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밥이나 국을 퍼줍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나면 뒷정리를 도맡아서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가만히 있는데도 말이지요. 정말로 천사표가 따로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 친구와 단 둘이 있게 되어서 평상시에 가졌던 의문을 물었습니다.

“너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조건 나눠주고, 또 그렇게 친절할 수 있니? 혹시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솔직히 저 역시 이렇게 직접 국이나 밥을 퍼주고, 또 도맡아서 뒷정리도 해봤지만,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또 그냥 가만히만 있는 친구들이 얄미웠거든요. 괜히 손해 보는 일을 한 것만 같은 생각에 다음부터는 눈치를 살살 보면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언제나 웃으면서 도맡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그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대접받고 싶거든.”

주는 것만을 통해서 어떤 기쁨을 얻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 역시 대접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자신에게 나눠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큰 기쁨을 얻는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많은 이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자신에게 주지 않음에 대해서 아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문득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 당연히 받는 것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께 받은 것을 보지 않으니,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청했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느냐면서 불평불만을 던지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셔서 열을 가시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열이 가셨다고 해서 곧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시중을 들 정도로 왕성히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의 힘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보다는 주님께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 받았으니 자신 역시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나서 시중을 들었던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께 받은 것을 보려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그래서 주님께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다. 수많은 실이 우리와 동포를 잇고 있다(헨리 멜빌).


시몬 베드로의 집터입니다.


귀감이 넘치는 좋은 글(인터넷에서 퍼온 글)

사람이 미우면 단점만 보이고 사람이 사랑스러우면 장점만 보인다고 합니다. 매사 하는 일이 꼴 보기 싫으면 미운 감정이 내 속에 있는 것이요. 하는 일이 모두 어여뻐 보이면 사랑의 감정이 내 맘에 있는 것이랍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모두가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점만 지니는 완벽한 사람 없으며 단점만 지니고 있는 미숙한 사람 없지요. 우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평가하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으면 좋은 사람이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 완전하고 완결하고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런 분이 있다면 오직 신뿐이겠지요.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고도 하는 것 같아요.

나에게 단점이 있다면 개선하고 나에게 장점이 있다면 부각시켜 개선해야겠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 때 모르고 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알고도 잘못을 할 경우엔 용서받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에게 단점을 알고 그것을 성찰할 때 자아 발전이 될 수 있으며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존경하며 존중할 것입니다.


갑곶성지의 지하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