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묵상글 나눔

주님의 손길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수성구 2015. 10. 27. 01:20

주님의 손길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주님의 손길 글 : 손용익 그레고리오 선교사 복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란 것을 깨달아 나가는 동안, 주님께서는 우리가 한걸음씩 성숙되고 성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사랑의 원천이란 것을 믿고 주님이 가신 길을 향해 한걸음씩 따라갑니다. 신자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시편으로 끝기도를 바치며 시편을 통해 풍부한 공간의 상징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영적인 면에서도 자유와 광활함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주님의 이끄심 안에 머물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광대한 전망을 개발하게 되고 정신세계는 광활함 속에서 지극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은 탄생 때부터 부딪힘의 강도에 따라 더욱 퉁겨날 수 있는 공과 같은 탄력성입니다. 그래서 금방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고난과 고통을 많이 받을수록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깊이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 시편기도를 잠들기 전에 바칠까요? 우리는 잠드는 순간 오늘 하루의 일과가 끝이라 생각하지만 잠은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준비단계란 양면성이 있습니다. 잠은 피곤에 젖은 육체와 정신세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하는 반면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찬란한 태양의 빛을 받으며 새롭게 하루를 맞이할 때, 우리는 어떤 의미로 하루를 맞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과 같이 찌든 삶이 되겠지만 죽음에서 부활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하루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새날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기쁨의 선물은 아침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빛과 생명을 선물 받았다는 마음에서부터 새롭게 싹터 오른 새싹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주님의 손길을 외면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신앙생활을 허상에 빠진 신앙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느냐의 길은 자신 마음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며 주님께 받는 은총 또한 자신의 믿음척도에 따라 분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백합 > 묵상글 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  (0) 2015.10.28
죽음 믿음|  (0) 2015.10.27
안식일에 드러난 예수님의 사랑  (0) 2015.10.27
신뢰의 기도|◈   (0) 2015.10.25
회개, 은총의 길|  (0)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