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복음

2015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수성구 2015. 7. 11. 06:10

 

2015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제1독서 창세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복음 마태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다음 제시하는 내용을 그대로 한 번 따라 해보세요.

1. 의자에 앉은 뒤에 오른발을 들어 올려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십시오.
2. 원을 그리고 있는 상태에서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공중에 숫자 6을 그리십시오.

어떻습니까? 잘 되십니까? 아마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던 발의 방향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정신을 바싹 차리고 다시 해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을 해봐도 숫자 6을 그리는 순간 오른발은 반대방향으로 바뀔 뿐입니다.

이 실험의 의미는 우리의 머릿속에 어떤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어서라고 합니다. 즉, 6이라는 숫자를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발 역시 6이라는 숫자를 따라서 그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만큼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 실험은 보여줍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갖는 대표적인 고정관념은 무엇일까요? 바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것들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다른 이들을 억누르고 그 자리에 올라서려는 욕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사랑을 외면하는데 익숙합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비겁한 모습 역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법칙이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을 우리는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위협이나 모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심판의 날이 오면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임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지금 현재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박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영적인 박해가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볼 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한 말씀일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 중심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주님 중심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세상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주님께서는 심판의 날이 오면 이 모든 것이 헛된 일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저버리는 세상의 일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노력한다면 분명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조금씩 바뀌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영혼 없는 육신은 죽은 것이고, 하느님 없는 영혼은 죽은 영혼이다(아우구스티누스).


오늘 베네딕토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노력을 더합시다.

프랑스의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지속적으로 참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어느 기자가 “책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지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계속 쓰는 것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쉽지 않음을 우리의 삶 안에서 자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을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노력이 없어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저절로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커다란 착각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주님의 일을 하는데 적극적인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분명 한층 더 주님 앞에 나아가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면허증 받아왔습니다. 이번 달에 또 외국을 나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