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2015년 6월 12일 예수 성심 대축일

수성구 2015. 6. 12. 06:55

 

2015년 6월 12일 예수 성심 대축

제1독서 호세 11,1.3-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제2독서 에페 3,8-12.14-19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8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14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복음 요한 19,31-37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얼마 전에 사제서품을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사제로 살아가니까 어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첫 마디는 이러했습니다.

“너무 바빠요.”

그토록 되고 싶었던 사제의 길, 그 신부님은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서 열심히 사목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도 바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남들은 이 삶이 편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청년이 제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부님, 특별히 할 것도 없는데 저 그냥 신부님이나 될까요?”

어떤 이들은 이 길이 편하고 쉬어 보이기도 한가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복음 선포의 직무에 충실한 삶은 분명히 바쁘고 또 힘든 길입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나의 스케줄을 나를 위해 내가 짜는 것이 아니라, 남이 짜주는 스케줄에 맞춰서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라고 말입니다. 나보다는 주님을, 또 나보다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삶이 바로 사제의 삶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쉽지 않은 길입니다.

사제가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미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미사를 통해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주님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없으면 과연 미사를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성사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사제에 대한 비난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 신부님이 있는 한 이 본당에는 다니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제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요?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에 우리는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 스스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받아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며,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입니다. 왜 이런 날을 제정했을까요? 너무 쉽고 편한 길이라면 이런 날을 제정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지만 이 길을 걸어가는 사제들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만큼 이 길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걸어가기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인 오늘,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간적인 부족함을 보려하지 마시고,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하는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사제는 영성생활을 최우선 사안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사제들이 영성생활의 전문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2015년 인천교구 사제서품식에서...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20세기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썬다 싱(Sundar Singh)은 특별히 티벳 지역에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지요. 그런 그가 어느 날, 불치병으로 입원한 소년을 찾아가 밤새도록 기도하자 병이 씻은 듯 나은 것입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병자들이 몰려오는데 대부분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치유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복음 증거 외에 병 낫는 목적만 가지고는 기도하지 않겠다.”

신앙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과 세속적인 것을 목표로 주님을 찾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주님이 배제된 모습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병 낫는 목적만을 가지고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만 바라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선순위에 주님의 자리는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제성화의 날인 오늘, 사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세상의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볼 때에만 비로소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라는 고백을 주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