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수성구 2022. 9. 22. 06:04

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조명실험자가 지도를 들고 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행인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큰 나무판을 든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동시에 지도를 든 실험자를 비슷하게 생긴 사람과

바꿔치기합니다.

행인은 과연 실험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까요?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대부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성별이 바뀌었음에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주의 깊게 변화를 보지 않아서일까요?

실제로 우리 뇌는 변화를 생각보다 섬세하게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나 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관심이 없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기본적으로 인지능력의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특히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겸손은 말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계속된 성찰과 묵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나의 실수를 줄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게 됩니다.

헤로데 영주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는 몹시 당황하게 되지요.

왜냐하면 지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로디아 딸의 청에 의해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사실 은근히 제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헤로데 영주에게 세례자 요한은 사사건건 자기 일에 반대하는 귀찮은 방해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라는 생각보다는 약속을 지킨다고 생각하고서 헤로디아 딸의 춤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민중 속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죽었던 요한이 부활하여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있다느니,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느니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기가 죽인 요한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했지만, 오히려 마음의 상태는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지만, 가장 힘없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장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자기 인지능력을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겸손을 통해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의 후회를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점만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라(헨리 포드).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