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순교자와 배교자의 구분 기준, 성덕을 증거하기

수성구 2022. 9. 16. 06:37

순교자와 배교자의 구분 기준, 성덕을 증거하기

1코린 12,31-13,13; 루카 7,31-35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2.9.16; 이기우 신부

 

  오늘은 고대 로마시대에 순교한 초기 교회 순교자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 치프리아노는 문학과 수사학 등 당대 최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라틴 문학의 대가로서 신앙과 교회를 옹호하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남긴 교부입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테르툴리아노 등과 함께 당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리스도교에 고대 그리스의 정신적 유산과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합해서 교회를 풍요롭게 가꾸어 나갔습니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이들의 신앙과 성덕이 녹아 있고, 이러한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토착화 노력 덕분에 당시 민중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여 이들을 본받아 성덕을 닦는 데 좋은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에서 드러나듯이, 순교라는 꽃이 피기 위해서는 평소에 성덕을 닦고 증거하는 노력이 뿌리내려 있어야 합니다. 성덕 없이는 순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 창설 주역인 초기 선조들 가운데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등은 아직까지도 배교자로 알려지고 있어서 명예 회복이 시급합니다. 이들은 느닷없이 북경 주교로부터 전해진 조상제사금지령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빌미로 삼아 배교를 강요하던 조정 대신들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시적으로 배교 선언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끔찍한 고문의 고통에 못 이겨 억지로 행한 ‘입술배교’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중세 서양 문화 풍토 안에서 정식화된 신조 내지 교리를 고백하기를 포기한다는 말 마디에 못지않게 구체적인 삶이 더욱 중시되는 조선 사회 문화 풍토 안에서 윤리 도덕적 기본 덕목으로 구현되는 하느님의 구원의 진리와 계명의 진실된 준행 여부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함을 고려하면 이들은 배교자가 아닙니다. 

 

  그 근거를 들자면, 이승훈 베드로는 이벽의 뒤를 이어 가성직자단 결성을 주도하여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까지 5년 동안 무려 4천여 명을 입교시켜 조정과 대신들로부터 ‘천주교의 수괴’로 낙인찍힌 인물이었으므로, 이 박해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수괴를 꺾어 넘어뜨려야 천주교 신자들의 씨를 말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간교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고문에 못 이겨 진술한 관변기록만을 근거로 그를 배교자로 간주하는 문헌사학자들도 딱합니다만, 실제 삶을 보면 그는 결국 치명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4대가 치명하여 순교자 집안을 이룸으로써 첫 영세자로서 그 세례명에 걸맞게 한국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가 신앙을 포기한 배교자였거나 신앙적 가치를 배척했었다면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또 정약전 안드레아는 사돈지간이었던 이벽의 권유로 정씨 집안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아우인 약종과 약용에게도 이를 전해 주었으나 조상제사금지령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 때문에 배교자로 몰려서 외딴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리로 받아들인 천주교 교리에 따라서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갈구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공리공론을 일삼던 당시 유림들과 달리 실사구시의 정신에 투철하게도 유배생활 중에, 어부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이용후생의 정신에서 물고기들과 해양 생태계를 관찰하여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없는 해양생물도감인 ‘자산어보’를 편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기존의 주자학적 해석을 뛰어넘어서 유학의 기본 경전을 모조리 천주교 신앙의 기준에서 재해석해 냈을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당시 조선 사회를 천주교 신앙에 입각하여 개혁하기 위한 저술을 편찬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으며, 이것이 사회교리 분야에서 학문적이고 사상적인 토착화 신학이 되었습니다. 정약용은 이 저술을 쓰는 동안 자신보다 학문이 더 뛰어났다고 여긴 형 약전에게 일일이 인편으로 자신의 글을 보내 자문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삼천년기를 맞아 오늘날 전반적으로 신앙의 열기가 식은 세계 교회 안에서 유독 한국교회가 이례적으로 보여주는 활력의 원인을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진실하게 삶으로 증거했던 이 창설 주역들이 성덕과 신앙을 솔선수범한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유례없이 자발적으로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여 교회를 태동시키고 백년 이상 계속된 가혹한 박해를 견뎌낸 불가사의한 저력은 복음의 진리를 믿고 생활해 온 구도적 혼(魂)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성덕은 신덕의 탁월한 형태이기 때문에 공동선에 대한 의덕과 가난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회적 애덕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정신을 계승하려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또 사회적 애덕 실천으로 자아를 실현하려 노력함으로써 성덕을 증거한다면, 신앙선조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하느님의 영광까지도 빛낼 것임은 물론이지만 갈수록 물질적 가치관에 물들어 가고 있는 전체 중산층의 진로를 선도하는 막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해가 종식된 오늘날 신앙의 증거는 성덕의 증거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