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월 12일 성 유베날리스 안키나

수성구 2022. 9. 12. 03:52

월 12일 성 유베날리스 안키나

축일: 9월 12일

성 유베날리스 안키나 (Juvenal Ancina)

(1545 - 1604), 살루초 (Saluzzo) 에서 주로 활동

 

 

 

유베날리스 안키나(Juvenalis Ancina)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포사노(Fossano)에서

지방 귀족 가문인 두란도 안키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례 받을 때에 포사노의 수호성인인 나르니(Narni)의 성 유베날리스의 이름을 따서

요한 유베날리스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 대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사보이아(Savoia)의 몬도비(Mondovi)로 갔고 부친의 사망 후에는 파도바(Padova) 대학교를 다녔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토리노(Torino)에서 철학과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의 평소 소망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인술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는 게임이나 오락을 해본 일이 없다. 그의 유일한 오락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시를 쓰는 것이

고작이었고, 교회와 국가 간의 중대사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성 특히 토마스 모어(Thomas More, 6월 22일)에 관한 두 편의 풍자시를 썼고,

‘그날 분노의 날’에 대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와 묵상에 더욱 몰두하고 세상일을 경시하기 시작했으며

하느님을 위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사보이아 공작의 주치의로 초청받고 1575년에 로마(Roma)에 갔다가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

(Philippus Nerius, 5월 26일)를 만나 오라토리오 회원이 되면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595년 그는 거의 10여 년 동안 나폴리(Napoli)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봉쇄생활을 갈구하였으나

살루초의 주교직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참으로 마지못해 주교직을 수행하다가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그는 189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다.

 

<출처 : 가톨릭 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