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 마태오 신부 / 2022년 9월 6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외부에서 강의를 마치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사제관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낮에 나가 밤에 들어왔으니 모든 불이 꺼져 있어야 하는데, 거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낮에 켜 놓고 나갔나?’라고 생각하면서 방문을 여는데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낯선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며 “누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다가, 한참 만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밤손님인 것 같은데,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힘으로 제압하지도 않았고, 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나의 공간에 들어와 있으면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낯선 것을 계속 들여놓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바로 ‘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을 받아들여서 죄를 범하는 우리입니다.
문제는 이 죄를 낯설게 여기지 않기에, 악의 침범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선의 실천이 낯익어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될 때, 매 순간 주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대한 일을 구상하면서 먼저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보면, 산에 가셔서 밤을 새우며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기도하시지요.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사도직을 부여합니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것이 밤을 새우면서
고민하게 할 정도로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을 것, 둘째, 사람들을 가르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열두 사도를 뽑으신 뒤에 제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을 계속해서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에 따른 사명은 예수님 시대와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선 기본적인 세 가지 사명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면서 주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했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도 못했습니다.
또 마귀를 쫓아내는 삶이 아닌 함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요?
마음은 따뜻하게, 행동은 씩씩하게, 진심이 통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릴 것(황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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