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윤리와 신앙

수성구 2022. 9. 5. 06:10

윤리와 신앙

 

1코린 5,1-8; 루카 6,6-11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2022.9.5.; 이기우 신부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지켜오던 안식일 관행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안식일 제도는 세 번째 계명으로 정해졌을 만큼 중요한 신앙 표현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고 따라서 육체 노동을 쉬어야 한다는 원래의 취지가 후대에 와서는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왜곡되게 좁혀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일부러 안식일에 회당에 데려다놓고서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시는지를 지켜보는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분을 고발할 구실을 만들려고 작정한 고약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신앙에 입각하여 순결과 진실의 윤리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합리적 이성을 내세웠지만 다신교 풍습에 젖어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던 그리스인들로서는 아버지의 첩을 데리고 살기도 하는, 순결과 진실과는 거리가 한참 먼 어처구니 없는 불륜을 저지를 만큼 그네들의 신앙은 잘못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잘못되면 윤리도 망가집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유다교를 신봉하던 유다인들과, 다신교를 신봉하던 그리스인들에게 하느님의 뜻이 전파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충돌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당시에도 윤리의 충돌을 빙자한 신앙의 배척 현상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조상제사금지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정과 유림은 천주교 신자들이 조상을 공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종교를 금한 임금도 거역하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라고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천주교 신자들은 모진 매를 때리며 문초를 하는 관장에게 천주교는 하느님께서 만민의 아버지이시고 임금보다 더 높은 하늘의 임금이심을 믿는 ‘대군대부(大君大父)의 참종교’임을 고백하며 죽음으로 항변하였습니다. 

 

  하지만 박해를 일으킨 숨은 이유는 이런 윤리적 논쟁의 뒤에 감추어져 있던 정적 제거의 음모였습니다. 당시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던 세력은 노론이었고 이들의 정적인 남인 선비들이 공교롭게도 천주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조상제사라는 윤리적 풍습 문제에서 꼬투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1801년 신유박해에서부터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을 무려 2만여 명 이상 죽인 조선 박해의 형식적 원인은 조상제사라는 윤리 풍습 문제로 인한 충돌이지만, 실질적 원인은 정적을 숙청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느님 신앙을 거부한 데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천주교를 박해한 조정과 유림은 명 왕조를 상전으로 섬기며 그 자체가 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하느님 신앙은 무속 미신으로 깔보며 배척했고 이 신앙을 삼위일체 도리로 밝혀준 천주교는 서양 종교이니 서구 열강의 앞잡이라고 뒤집어씌워서 또 배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해의 칼바람에 쫓겨 심산유곡으로 숨어 들어간 천주교 신자들은 교우촌을 건설하여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신앙에 따라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이라는 순결과 진실의 윤리를 실천한 것입니다. 주일이 되면 공소에 모여서 함께 공소예절을 드렸고, 평일에는 가족끼리 매일 아침저녁 기도를 바쳤는데, 이것이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러니 어쩌다가 일 년에 한 번 정도 사제가 포졸들의 눈을 피해 밤 산길로 찾아와서 미사성제를 봉헌할 때면 지상의 천국을 맛보는 듯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민족의 종교 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요, 겨레의 얼을 되찾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오늘날의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면, 18세기 말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로 한국-아시아 문화와 서구-그리스도교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현재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적 전통 문화 양식을 바탕에 깔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합쳐진 서구적 사유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적 사유방식으로 보아도 십계명의 셋째 계명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것인데도 실제로는 “주일미사에 빠지지 마라” 하는 것으로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또 전통적 사유방식으로 보아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일인데도 주일미사 참례 비율이 영세자의 20% 미만으로 떨어졌다가 그마저도 장기화되어 가는 코로나 사태로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도 주일미사 참례로 나타나는 신앙의 실천상은 더 퇴보한 셈입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주일미사에 대한 본질적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느님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하느님을 찬미하러 미사를 봉헌해야 하고 그러자니 생업을 내려놓고 쉬어야 하며, 미사를 봉헌한 다음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가족이 함께 하거나 여러 가족이 함께 해도 좋겠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의 표현입니다. 신앙 표현이 올바를 때에라야 진실하고 순결한 윤리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