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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 4. 연중 제23주일 -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기 포기

수성구 2022. 9. 4. 04:05

조욱현 토마스 신부 / 2022. 9. 4. 연중 제23주일 -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기 포기

연중 제23주일다해

복음: 루카 14,25-33: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기 포기

 

오늘의 주제는 참된 지혜이다. 

이 지혜는 지성과도 슬기와도 다른 것이다. 

이 지혜는 인간의 역사 전체를 하느님의 빛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이다. 

 

이것은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고 인간 혼자의 힘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그래서 지혜는 지성과 통찰력의 선물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지혜의 완전한 표현을 그러기에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4)이시다. 

왜냐하면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고 또 드러난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지혜가 인간들의 지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는 그 어떤 것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자시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헛된 감상에 젖는 것이 아니다. 

즉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6절).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항구한 생활 태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당신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항구하고도 철저하게 당신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다음 자리에 두는 것을 뜻한다. 

 

즉 그분은 언제나 가치서열에도 우리 마음을 봉헌하면서 항상 첫 자리에 모셔야 한다. 

나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주님께 얼마를 할애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

 

그리스도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어려운 요구를 하신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절). 

정말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려 할 때는 항상 십자가의 그림자가 그 생활을 뒤덮게 된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비천하게 태어나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삶의 모든 순간이 구원의 의미로 충만하다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용기를 잃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면서 실망하지 않으려면 계산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두 비유를 말씀하신다(28-33절). 

그러면서 이 비유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리라 하는 태도에 연결하고 계시다.

 

우리가 가지고자 하는 열망,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라는 것이다. 

루카 복음에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로 재물에 대한 집착을 들고 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루카 18,24; 12,13-34; 16,1-13 참조). 

사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보다 고귀한 감정, 예를 들면,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까지도 막아버린다. 

그러기에 두 비유가 주님을 따르는 본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대한 장애 요소로서

재물에 대한 집착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잘 계산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분을 따르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을 따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다른 생활, 다른 요구, 다른 유혹 등을 철저히 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는 것이 그 자체가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고(콜로 1,18), 

“모든 피조물의 맏이”(콜로 1,15)이심을 긍정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그분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모든 사물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여

우상화로부터 해방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 하느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되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하느님이 제일 첫 자리에 모셔져야 하는데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이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우상이라고 한다.

 

수도자는 속세를 떠난다. 그것은 세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고, 

세상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궁극적 가치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도 가치관에 있어 우상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자유로우며, 하느님을 잘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기로 하고 사는 우리는 항상 주님을 따르는데 잘 계산하고 따라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외에 다른 것에 집착하여 자기 자신까지도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모심으로써 우상에 매이지 않고 주님을 올바로 모시며 살아가는 우리 되도록 살아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