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8월 25일 성 요셉 데 갈라상스 사제

수성구 2022. 8. 25. 02:49

8월 25일 성 요셉 데 갈라상스 사제

축일:8월 25일

성 요셉 데 갈라상스 사제

San Giuseppe Calasanzio Sacerdote

St. Josephus Calasanctius, C

Saint Joseph Calasanz (Priest) 

(Peralta del Sal, Aragona (Spagna), 31 luglio 1558 - Roma, 25 agosto 1648 )

Born:11 September 1556 at Peralta, Barbastro, Aragon, Spain in his father's castle
Died:25 August 1648 at Rome, Italy of natural causes; buried at Saint Panteleone, Rome
Beatified:18 August 1748 by Pope Benedict XIV
Canonized :16 July 1767 by Pope Clement XIII
Giuseppe = aggiunto (in famiglia), dall'ebraico

학교들의 수호 성인

 

1557(1558)년, 스페인의 아라곤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칼라상시오의 생애는 행운과 불운이 번갈아 일어났다.

교회법과 신학을 공부한 그는 지혜와 행정 기술로 존경을 받았다.

 

28세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교욱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

먼저 본국에서 일하다가 로마로 가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헌신하고

이런 목적하에 수도회를 창립했다.

 

로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한 전문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되자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불우한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교육시켰다.

반응은 매우 놀라웠으며, 더 큰 숙박 시설을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생길 민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교황 클레멘스 8세가 학교를 지원해주었으며 이 원조는 교황 바오로 5세 때까지 계속되었다.

 

차츰 다른 사람들도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학교들이 문을 열었다.

1621년에 그의 공동체는 수도단체로 공식 인준되어

종교 학교의 정규 사제단 또는 피아리스트회로 불리었다.

얼마 후 요셉 신부는 종신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러가지 편견과 야심과 조작 등이 그 단체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자기를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모략 중상을 받아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가난한 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왜냐햐면 가난한 이들이 교육을 받게 되면 자기가 하는 천한 일에 불만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회원 중 몇 사람이 요셉의 친구인 갈릴레오를 총 책임자로 추대했다는 데 충격을 받았으며

이러한 처사는 회원을 분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황청이 여러 번 조사를 하고 결국 요셉은 직위를 박탈당했다.

수도원 내에 분쟁이 계속되는 동안 회원들은 해산되었다.

1648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요셉이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은 수도 단체로서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필요성에 대해 요셉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사람은 없었으며

또한 얼마나 근거 없는 죄명이 그에게 씌워졌는가를 그보다 더 잘 안 사람도 없었다.

그는 만일 교회내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교회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 그가 권한을 부여받은 조사자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인간의 무지와 수치, 편견은 때때로 오랫동안 진실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한다.

요셉은 억압 중에서도 그의 수도회가 다시 인정받게 될 것이며 공인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으로 그는 강한 인내와 참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직위를 빼앗긴 후에도 요셉은 자신을 지지하는 열렬한 사람들에게서 반대파들을 보호했다.

공동체가 해산되었을 때, 그가가끔 비유를 들던 욥에 대해 언급했다.

 

"주님께서 주셨고, 주님께서 가져 가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찬미 받으소서."

 

 

 

성 요셉 데 갈라상스 사제의 글에서

(Memoriale al Card. M. A.Tonti, 1621: Ephem, Calas. 36,9-10: Romae 1967, pp.473-474;

L.Picanyol, Epistolario di S. Giuseppe Calasanzio. 9 vol., ediz. Calas.,Romae 1951-1956,passim)

 

그리스도께 매달려 그분만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노력합시다.

 

어린이들,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렇게 하여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데

헌신하는 것은 고귀하고 큰 공로가 되는 직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교사가 되어 그들의 육신과 영혼의 선익을 찾으며 지식을 전수하고 특히

그들에게 신앙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에게 수호 천사들이 하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어린이들의 출신이나 가정의 상태에 관계없이 그들의 악을 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더 쉽게 그리고 더 자발적으로 선행을 하도록 자극을 주고 인도하는 데 가장 좋은 도움 입니다.

교육을 통하여 어린이들은 더욱 개선되어 교육을 받은 후에는

그것을 받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모를 정도로 변합니다.

그들은 마치 나무에서 움트는 새싹과 같습니다.

새싹은 처음에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자라나게 할 수 있지만

일단 굳어지면 그것을 고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전혀 없어지고 맙니다.

 

어린이들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준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만 인간적 품위의 향상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닙니다.

그 교육은 신앙 면에서건 물질적 발전의 면에서건 사회의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올바른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볼 때 기뻐하는 반면,

시 당국자들은 정직하고 착한 시민들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특히 교회로서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로서

교회의 다양한 생활 및 활동 분야에 성숙한 이답게 또 효과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 교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것을 더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넘치는 사랑과 큰 인내심의 무기를 지녀야 합니다.

특히 그들은 겸손에 기초를 두고 진리를 가르칠 합당한 도구가 되고

이 고귀한 직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힘을 지니며

천상 은총에 풍성해지도록 하느님께 겸손되이 간구해야 합니다.

성서는 "많은 이들을 정의의 길로 인도하는 이들은 별처럼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직자들이 종신 서원으로써 이 직분을 수행하기로 하고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그분만을 섬기는 데 노력한다면 이 직분의 효과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은 주님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이 성인은 1556년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에 있는

페랄타 데 라 살 근교의 아버지 성에서 태어난 고귀한 가문의 출신이다.

아버지는 갈라산즈의 돈 베드로라는 남작(男爵)이요, 어머니는 돈나 마?틋遮?분으로,

모두 신심이 두텁고 그 아들이 마음속에 하느님을 공경하는 정신을 심어주는 동시에

서로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으므로,

요셉은 어려서부터 수덕에 힘쓰며 무슨일이든지 하느님의 뜻을 중히 여기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장성해서 그는 레리다, 발렌시아, 알칼라 등 스페인의 유명한 대학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청춘기에 떨어지기 쉬운 위험한 유혹을 물리치고 신앙과 정덕을 훌륭히 보존했다.

특히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은 귀부인과 교제할 때는 먼저 성모상 앞에 엎드려 열심히 기도하며

동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서원을 새롭게 함으로써 그러한 위험을 능히 이겨나갔다 한다.

 

그 시절의 일이다. 중병에 걸려 일어날 희망이 없었던 요셉은 만일 병을 완쾌하게 해 주신다면

후에 꼭 신부가 되어서 하느님을 위해 일생을 바칠것을 서약했던 바,

기이하게도 그런 중병이 차츰차츰 차도가 있어서

곧 완전한 건강을 회복했으므로 그 서약을 이행해 군인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고,

158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로부터 요셉은 소속 교구의 주교 대리로 근무하며 열심히 기도와 고행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며 냉담한 신자들을 다시 신앙의 길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성덕과 박학함을 전해 들은 마르코 안토니오 고론여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초청해 여러가지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

요셉은 이 같은 명예로운 직에 있으면서도 안락한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가톨릭의 중심지인 로마에 가서 근무할 때에도 낮에는 직무에 충실히 분주한 하루를 보냈고,

저녁에는 7개의 대성당들을 모두 순례하지 않고서 쉬는 일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페스트가 시중에 만연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성 가밀로등과 더불어 환자를 간호해 주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위험 중에 있는 자들에게 병자 성사를 주고,사망한 이들은 정성껏 매장해 주고 기도해 주는 등

그야말로 맹렬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로마의 소년 소녀들의 교리지식이 부족함을 통탄해

그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며 성인 행적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으나,

그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마침내 피아리스트회(교회 학교의 정규 성직자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1617년에 교황 바오로 5세에게 그 인가를 신청, 1621년에 그 허가를 얻었다.

 

이리하여 요셉은 교황의 명으로 초대 총장이 되어 그 중책을 잘 완수했으며,

그의 뛰어난 애덕과 겸덕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어

그 수도회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 각국에 전파되어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성스러운 사업을 하는 데는 꼭 악마의 방해와 시기를 받지 않을 수가 없는것으로,

이 피라이스트회 안에도 역시 유다와 같은 사제가 있어,그 발전을 시기하고 학교 교원들에게 선동되어

요셉의 사업에 대해 자꾸 거짓 투서를 했으므로,

결국 그는 총장직을 내놓게 되고 그 수도회 자체도 해산될 비운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의 인내와 성덕은 이런 때일수록 더 빛을 발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국왕 필립보는 그를 자기 나라의 주교로 영접하려 했고, 또 교황은 그를 추기경에 임명하려 했으나,

그는 일체를 사양하고 세인들의 오해를 사면서도 오직 귀여운 아동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단 하나의 위로였다.

 

그러는 동안 그를 모략하던 간계가 드러났고,

요셉은 청천백일과 같이 결백한 몸이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수사는 불치의 병에 걸려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때에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편지를 요셉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받자 요셉은 먼 거리도 헤아리지 않고 즉시 달려가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그를 끌어안고

"형제여! 나는 일생동안 오늘과 같이 기쁜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마음을 고쳐서

하느님의 품안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기를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했다.

 

이리하여 요셉은 52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아동들의 교리 교육을 위해 헌신했고,

피아리스트회의 장래의 발전을 예언하고

1648년 8월 25일에 영원한 상급을 받기위해 하느님의 품으로 달려갔다.

그 유해를 백년이 지난 후에 열어본즉, 혀와 심장은 조금도 썩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전구로 인해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1767년에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또 그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어 그 수도회는 현재까지 계속 발전해

전 세계를 16관구로 나누고, 2천 2백며의 회원과 더불어

다수의 학교 기숙사를 운영하며 5만여명의 아동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학교들의 수호 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