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미래 세대에게 전해 주어야 할 진리

수성구 2022. 8. 13. 07:45

미래 세대에게 전해 주어야 할 진리

에제 18,1-32; 마태 19,13-15 /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2022.8.13.; 이기우 신부

 

  독서와 복음에서 들려주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세대를 넘어서서 전해지고 실현되어야 할 진리의 시간적 차원에 대해 일깨워줍니다. 선대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포로로 끌려와 있는 바빌론에서 에제키엘은 죄의 무게는 죄를 저지른 당사자와 당대에만 영향이 미치는 것이지 어린 세대와 미래 세대는 책임이 없음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다음 세대에까지 죄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경우는, 자유를 선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같은 죄를 저지르는 경우뿐입니다. 이것이 원죄의 영향력이요, 미래 세대의 무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에제키엘은 “어떤 사람이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그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이치를 깨우쳐 주면서, 젊은 세대로 하여금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아께 희망을 걸라고 가르쳤습니다. 

 

  훗날 메시아로 이스라엘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엘리트들이건 군중이건 입으로는 하느님을 섬기고 믿는다고 내세우면서도 하나같이 진리에 눈이 멀고 정의에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처럼 올바른 삶을 살지 않고 따라서 올바른 세상을 이룩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답답한 상황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시대의 징표도 쳐다보지 않으니 가야할 진로도 알 수 없어서 생긴 결과였습니다.

 

  이미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상기시키시며,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부모의 배려와 가르침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처럼,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처신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새 백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음에서 오는 카리스마는 진리에 대한 순수한 감수성입니다. 하지만 젊어도 이 감수성이 둔할 수도 있고, 늙었어도 감수성이 예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 니코데모나 아리마태아의 요셉 같은 원로 바리사이도 예수님의 뜻을 알아듣고 그분의 신원을 알아보았으며 그리하여 그분의 나라를 따르는 제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진리에 대한 감수성이 살아있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한 새 백성에게는 총체적인 난국에서라도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시대의 징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징표는 우리가 처한 현 위치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아갈 진로까지를 내다보고 정확한 좌표를 설정하려면 원점에서부터 이 징표까지의 거리를 재야합니다. 모든 시대의 징표는 하느님이라는 원점을 기준으로 측정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에제키엘이 예언자로서 우상숭배를 단죄하고 지킬 계명을 강조하며 의롭고 선한 생활을 요청한 바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메시아로서 당시 유다교가 총체적으로 우상숭배에 물들었던 까닭에 아예 군중 속에서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새 백성이 되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점으로서의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창조주와 진리로 이끄시는 아버지로 소개하시면서 진복팔단과 산상설교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징표를 빼놓지 말고 식별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당신으로서는 각종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시며 마귀들려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심으로써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사도들에게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부활 신앙으로 살아갈 것과, 성령으로 함께 하실 당신의 현존을 믿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십자가로 부활하는 신앙이 삶의 철칙이라면,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을 선포하라는 선교 명령이 활동의 철칙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가 된 제자들은 부활하시어 스스로 원점이 되어 주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았고, 그 성령의 이끄심대로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공동생활 양식을 확립했고 이것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가리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맞아들이는 새 백성으로 받아들였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 출신 배경에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에제키엘이 확립한 바 죄는 연좌제처럼 세대로 옮아가지 않고 오직 개인들의 실존적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어린 세대에 대한 기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는 에제키엘의 당부는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입니다. 19세기 백 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를 저지른 조정과 유림의 죄악도, 그 후 20세기 백 년 동안 온 겨레가 함께 겪어야 했던 식민지살이와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고통으로 이미 그 죗값을 다 기워갚은 현재, 이 새로운 세기에서는 그 모든 죄악에 대한 기억과 부채 의식도 다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이 새 마음과 새 영을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새 백성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으고 계십니다.

 

  요컨대, 일단 앞선 세대의 죄악이 다음 세대에게는 책임이 없고, 젊은 세대는 선대의 죄악을 떨쳐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 새 역사를 이룩하라는 것, 이것이 미래 세대에게 전해 주어야 할 진리의 메시지입니다.